"드디어 살만한 가격에" 펀드매니저들 주식비중 늘리는 이유는

by김보겸 기자
2023.03.24 06:30:00

이재욱 AB자산운용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연초 랠리를 이어 오던 글로벌 증시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미국 중소형은행 파산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등 일련의 금융불안 사태에도 “물가를 잡겠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미국주식과 유럽주식을 담은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이재욱 AB자산운용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서울 시청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매니저와의 인터뷰를 세 문장으로 요약해봤다.

1. 드디어 주식을 제값에 살 수 있게 됐다.

2. 지금까지 저금리에 힘입어 주가 올랐던 기업들, 앞으로는 재미없을 거다.

3. 금리? 미·중 갈등? 다 필요 없다. 중요한 건 성장성과 수익성 내는 기업들을 선별해 투자하는 거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이재욱 AB자산운용 주식 매니저가 23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주식 운용팀에선 “그간 비싸서 못 쌌던 주식들, 드디어 제 가격에 사는 것 같다”는 환호가 나온다고 이 매니저는 전했다. 가격에 부담 없이 성장성 있는 기업들을 살 수 있는 시점이 지금이라는 설명이다.

△좋은 주식을 담을 굉장히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장기적으로 포트폴리오의 성장성을 굉장히 저렴하게 높일 수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한다.

△실제 작년 말 이후 운영팀은 포트폴리오에서 보유하는 현금비중을 줄이고 있다. (미국그로스펀드의 피투자 펀드인 ‘AB SICAV I 아메리칸 성장형 포트폴리오’ 기준 현금/현금 등가물 비중은 2022년 12월 말 4.06%에서 2023년 2월 말 2.71%로 줄었다.) 현금은 줄이고 우량성 있는 성장주들을 지속해서 편입하고 있다. 비중도 늘리고 있다. 오히려 시장이 안 좋아 보이지만 기회라고 생각한다.

△펀드 운용철학은 크게 두 가지다. 개별 기업들의 수익성과 우량성이 기준이다. 성장주는 재투자를 해야 향후 추세적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투자할 때 돈이 필요한데, 외부에서 조달하는 기업보단 지속적인 수익성을 보여서 기업 차원의 수익성으로 재투자에 조달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 그런 기업들이 저렴할 때 늘리는 셈이다.

△‘뉴 노멀’에 적응하는 기업들. 최근 10년간 경험했던 제로금리 시대는 다시 안 온다. 당분간은. 우리끼리는 ‘뉴 노멀’이라고 부르는데. 앞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금리가 이어질 것이다. 그 금리 수준에 적응할 수 있는 기업을 잘 찾아야 한다.



△조달비용을 외부보다는 내부 수익성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이다. 그 비용을 조달해서 유망한 기술에 계속 재투자할 수 있는 기업을 골라내야 한다. 지금까지 저금리에 기대 싼 비용으로 자금 조달해온 기업들, 1월까지는 랠리 펼쳤을지라도 앞으로는 아닐 것이다.

△유럽주식에는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공존한다고 본다. 먼저 긍정적인 건 금융주 위주의 유럽증시에서 개별 유럽 금융기업 위험은 굉장히 낮다는 것이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유럽에선 미국보다도 금융업 규제가 엄청 강해졌다. 심지어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이던 2018년 도드·프랭크법을 일부 개정하면서 중소형은행 규제를 완화할 때도 유럽은 안 풀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유럽 금융주들은 펀더멘털이 우수하고 신용위험도 낮다. 특히 장기간 저금리 거치면서 밸류에이션이 굉장히 낮아진 상태에서 보유하고 있다. 과거같은 저금리가 당분간은 안 올거고, 그래서 은행 수익성도 나아질 것으로 본다.

△다만 SVB 사태 등 금융업계발 문제가 터지면서 앞으로 규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규제가 강해지면 결국 금융기업 비용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업들의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모니터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 지정학적 위험은 이미 상수다. 모든 시장이 다 알고 있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영향을 안 받을 순 없지만, 글로벌한 공급망이나 재고 문제가 해결되느냐가 더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최근 화두가 되는 챗GPT 등 혁신적인 기술 진보와 관련해 한국이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사업을 확장하는지 여부도 더 영향을 많이 미칠거다.

△AB미국그로스펀드의 경우, 성장주라 해서 기술주만 담고 있는 건 아니다. 헬스케어 분야도 비중이 굉장히 높다. (헬스케어 분야 비중은 5.89%로 정보기술(9.06%)에 이어 2위다.) 헬스케어에서도 혁신적인 성장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본다. 가령 AI 등 기술진보로 유전자 관련 비용이 낮아졌는데, 상용화할 단계가 곧 올 거라 판단한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급등한 2차전지 테마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이 매니저는 “지속가능성 관련 테마에는 앞으로도 많은 투자 필요하고 기회도 있을 것”이라며 “2차전지 역시 지속가능성 테마랑 연결돼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개별 기업의 펀더멘털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해당 기업이 2차전지와 관련된 어떤 사업을 하고 있고, 향후 어떤 수익성을 낼 것이며 성장성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너무 당연하지만 어려운 것 아닐까. 인터뷰 말미에 이 매니저는 덧붙였다. “좋은 기업 선별하는 건 물론 어렵다. 그런 만큼 어느 때보다도 전문가의 분석과 운용을 통한 간접적인 액티브 투자가 빛나는 시기다. 전문가 손길이 필요하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