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박물관]①농산물직판장이 연매출 2조 회사로…두부 외길 34년 '풀무원'

by이윤화 기자
2018.11.29 05:45:00

무공해 원료·위생 포장으로 유기농 시장 개척 선구자
30여년간 오직 ‘맛·품질’…포장 두부 1인자로 성장
바른먹거리 대명사, 글로벌 로하스 기업으로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도시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무공해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순 없을까….’

1981년 5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농산물 직판장. 33.05㎡(10평) 남짓한 채소 가게 주인은 고민에 빠졌다. 일반 농산물은 농약을 통해 생산의 안정을 꾀할 수 있었지만 유기농은 수급을 예측하거나 통제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당시, 농약을 쓰지 않고 키운 유기농 수요는 많지 않았다. 작고 못 생긴 유기농은 제 값을 받기 어려웠고 상하기 전에 반값이라도 건지려면 ‘떨이’를 하기 일쑤였다. 직판장을 연 지 몇 개월 쯤 지나자 자본금도 바닥나고 3000만원가량의 빚까지 떠안게 됐다. 고민 끝에 유기농 채소와 함께 두부와 콩나물도 무공해로 길러 팔기로 했다. 한국 최초의 유기농 가게이자, 풀무원의 모태는 이렇게 탄생했다.

30여 년 전 두부는 100~200원이면 사먹을 수 있는 서민 식품이었지만, 유독성 방부제가 들어간 저 품질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저렴한 만큼 원료가 대개 수입 콩이어서 저장과 운반을 위해 유독성 방부제가 많이 쓰였고, 콩과 콩기름을 짜고 남은 비지(대두박)를 섞어 품질이 낮았다. 두부 응고제로 석회의 일종인 공업용 황산칼슘을 섞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 검은 비닐봉지나 신문지에 둘둘 말아 파는 비위생적인 유통 과정도 문제였다.

1984년 법인 설립 이후 본격적으로 기존 두부의 단점 보완에 나섰다. 차별화·고급화 전략을 펴기 위해 국산 콩만 쓰는 것은 물론 비지를 전혀 섞지 않고, 응고제도 가장 안전성이 높은 것을 택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에게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포장’이었다. 초기엔 생수가 담긴 비닐봉지에 한 모씩 담아주는 수준이었다. 모양새를 본 사람들이 ‘우주선 두부’라고 좋아하기도 했지만, 내구성이 약해 운반 도중 터지거나 쉽게 망가졌다.

당시 경영 총괄을 맡고 있던 남승우(66) 전 대표가 식품 선진국 일본을 찾아 공장 설비·제조 기술·포장 기술 등을 벤치마킹하고 연구했다. 일본의 위생포장 기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남 전 대표와 직원들은 1990년 국내 최초로 네모난 플라스틱 용기 개발에 성공했다.

부피가 작아 기존 보다 2배 이상 트럭에 실을 수 있었고, 내구성이 높아지면서 손실도 낮출 수 있었다. 용기 표면에 제조원과 유통기한을 표시하면서 중산층 주부들을 중심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갔다. ‘풀무원’이 유기농 두부 제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 한 순간이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시중에 판매되던 제품보다 5배가량 비싼 탓에 처음에는 압구정동에서 주로 직거래를 했다. 롯데·신세계·갤러리아(당시 한양쇼핑) 등 당시 서울의 최고급 백화점에만 납품했다. 유기농 고품질 두부로 입소문이 나면서 연일 완판 행진을 이어가자 다른 지역 백화점들의 러브콜이 쇄도했다.

그 시절 남 전 대표와 서울 시내 백화점을 직접 발로 뛰며 영업활동을 펼친 사람이 올해 초 CEO 자리에 오른 이효율(61) 대표다.

창립 이전 1983년 10월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한 이 대표는 “창업 초기 사람이 적었던 시절이라 영업뿐 아니라 마케팅, 배송, 납품까지 모두 한사람이 담당해야 할 정도였다”면서 “두부와 콩나물을 한양 슈퍼마켓, 현대백화점 등 서울에 이어 수도권, 대구, 대전, 광주 등 전국 4대 권역까지 확산시키려 노력했었다”고 돌이켰다.

유기농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한 뒤에도 더 좋은 두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맷돌을 이용하듯 콩을 갈고 전통 가마솥에서 끓이듯 콩즙을 가열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되, 연구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유통 기한이 짧던 초창기 포장 두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냉각 기술을 개발했고, 열 숙성을 통한 미생물 제어 기술로 유통 기한을 최대 12일까지 늘렸다. 2005년엔 소포제와 유화제를 쓰지 않고 염화마그네슘 대신 우유에서 추출한 밀키마그네슘을 응고제로 사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최근엔 무소포제, 무유화제뿐 아니라 천일염에서 추출한 천연 간수를 넣은 ‘합성첨가물 제로(0) 두부’를 내놨다.

하루에 약 38만 모가 팔리는 풀무원 두부는 여전히 대한민국 포장 두부 1인자다.

두부 매출이 2002년 1000억원을 처음 돌파한데 이어 2012년 208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11년 두부가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특정 기업이 시장점유율 50%를 넘기지 못하게 하는 등 제약이 따라 2013년 2016억원까지 떨어졌으나, 지난해 2064억원을 기록하는 등 45~50%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풀무원이 지난 2016년 2조306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2조 클럽’에 가입할 수 있던 이유도 더 뛰어난 품질의 두부를 만들기 위한 부단한 노력 덕분이었다.

시장 1위에 만족하지 않고 2005년 생산이력제 도입, 2006년 국내 식품업계 최초 ‘완전표시제’ 시행, 2007년 생식품(냉장식품) 업계 최초 유통기한·제조일자 병행 표기 등 소비자에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바른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품의 친환경성도 강화하고 있다. 2013년 두부 전 제품을 친환경 포장재로 전면 교체한 데 이어 2015년에는 식품업계 최초로 유기농 두부 2종에 탄소중립제품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유기농’이라는 미개척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해 30여년 만에 한국 최고의 두부 브랜드이자, 대표적인 바른먹거리 브랜드로 키워냈다”며 “세계 1위 두부 기업의 위상을 확고히 하며 건강한 삶과 환경보존을 동시에 추구하는 글로벌 로하스( 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