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10년]②"중국? 따라와봐"…`AI·자율차` 미래 선점한 삼성의 자신감
by양희동 기자
2018.10.16 05:10:00
메모리시장 압도적 1위의 힘
차세대·차차세대 제품 동시 준비
5년 앞 보는 '초격차 전략' 성과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반도체 고점 논란은 2010년에도 있었지만 이후 메모리시장은 오히려 더 커졌다. 중국의 추격도 신경쓰지 않는다”.
삼성전자(005930)가 지난 5월 서울에서 열었던 글로벌 투자 컨퍼런스에서 메모리사업부를 이끄는 핵심 관계자는 내년 이후 시장 우려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반도체 고점 논란에 대한 이런 자신감은 삼성전자가 10년 간 지속해온 ‘초(超)격차’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전략의 목표는 향후 1~2년의 단기 실적 개선이 아니라 5~10년 뒤 미래 수요를 선점하는데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수요가 퀀텀 점프할 ‘데이터 홍수 시대’를 ①데이터센터 ②인공지능(AI) ③자율주행차 등 3단계로 나누고 있다. 201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슈퍼사이클’은 첫 단계인 데이터센터로 촉발됐다. 2020년 이후 본격 상용화가 예상되는 AI와 자율주행차 등에 탑재될 메모리 수요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이들 수요를 2~3년 뒤 단기 호황이 아닌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바꾸는데 초격차 전략이 집중되고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삼성전자가 영업손실을 기록한 2008년 4분기 D램(1Gb DDR)과 낸드플래시(8Gb MLC)의 현물가격은 0.53달러와 1.03달러로 추락했다. 불과 1년여 전인 2007년 2분기 최고점을 찍은 메모리 가격(D램 6.25달러·낸드플래시 9.44달러)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2006~2008년 3년간 삼성전자의 메모리생산량(개수 기준)은 64억 5300만개→140억 900만개→306억 3900만개 등으로 불과 2년 새 5배 가까이 늘어났다. 업계 전반의 공급과잉은 가격 폭락으로 이어졌고, 금융 위기까지 맞물려 대규모 적자를 보게 된 것이다. 당시도 세계 1위 메모리 업체였던 삼성전자가 ‘늘 흑자를 내는 방법’으로 초격차 전략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는 물론 차차세대까지 동시에 준비하는 초격차 전략으로 2009년 이후 메모리 기술 격차를 최소 1년에서 최대 3~4년까지 벌렸다. 현재 D램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2세대 10나노급(1y) 제품을 양산 중이다. 2위인 SK하이닉스가 1세대 10나노급(1x) 제품을 2017년 말부터 양산한 것과 비교하면 기술 격차는 1년 이상, 3위 마이크론은 1세대 제품을 현재 개발 중이라 2년 이상 격차가 난다는게 업계 평가다. 또 낸드플래시도 가장 앞선 5세대 90단급 3D V낸드를 생산하고 있어,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에 비해 양산 및 제품화 능력이 반년 이상 앞서 있는 상황이다. 또 업황에 흔들리지 않는 시설 투자로 세계 최고의 양산 능력을 확보했다. 그 결과 하이엔드 제품을 곧바로 생산해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독보적인 능력을 갖추게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초격차의 힘은 경쟁사가 아직 개발도 못한 최첨단 제품을 양산까지 하는데 있다”며 “10나노급 D램은 중국의 개발 시점이 4~5년 뒤로 예상되지만, 삼성은 이미 전체 제품 중 70% 이상을 차지하며 20% 가량 비싸게 팔고 있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의 업계 유일 2세대 10나노급(1y) ‘8GB LPDDR4X D램 패키지’. [삼성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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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격차 전략의 성공은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삼성 총수의 흔들림없는 투자가 밑거름이 됐다. 이는 반도체 고점 논란 속에서도 초격차 전략의 지속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애초 초격차의 가시적성과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8년 간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 기간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은 10조원 대가 한계로 여겨졌다. 과거 고점 논란이 벌어졌던 2010년 한해 반도체 영업이익은 10조 1100억원을 기록했고, 이후 4년 간 매년 4조~8조원 대에 머물렀다. 고점 논란에 흔들렸다면 시설 투자를 대폭 줄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 시기 오히려 생산시설 확대를 선택했다. 2014년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완공에 이어 2015년엔 그해 반도체 영업이익(12조 7900억원)보다 많은 15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인 평택 공장을 착공, 미래 수요를 대비했다. 그리고 2016년 하반기부터 ‘FANG’으로 불리는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봇물을 이뤘다. 가장 앞선 기술의 제품을 곧바로 공급할 수 있었던 삼성전자는 데이터센터 수요를 독식했다. 슈퍼사이클도 삼성의 적기 공급이 있어 가능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서도 2월 총 30조원이 투입될 평택 2라인 건설을 결정했고, 3월엔 3년간 8조원이 투자될 시안 2라인을 착공했다. 또 내년을 목표로 3세대 10나노급(1z) D램과 6세대 120단급 V낸드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양산 시점은 2020~2021년으로 5G(5세대 이동통신)와 AI, 자율주행차 등의 상용화 시점과 맞물려 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수요가 4차 산업 혁명으로 인해 앞으로 급증할 것이란 전망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그 수요가 언제 본격적으로 늘어날지 정확히 예측하는게 관건”이라며 “메모리시장은 내년에 단기적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초격차 전략이 지속된다면 2020년 이후 시장도 삼성이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