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여전히 메모리반도체 강국이다

by이재운 기자
2017.06.17 06:30:00

D램 마이크론 굳건, 낸드도 미국 업체 강세
폭 넓은 관련 생태계가 현재 기술력 만들어
한국도 슈퍼사이클 종료에 대비해 고민해야

스티브 밀리건(왼쪽) 웨스턴디지털 CEO,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테크놀로지 CEO
[이데일리 이재운 기자] 한국이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항상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해외업체가 하나 있다. 바로 ‘마이크론(Micron)’이다. 한때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000660)) 인수 후보이기도 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005930)가 지배하고 있는 D램 시장에서 꾸준히 자기 몫을 지켰고, 결국 일본 엘피다를 인수하며 3강 구도의 일원으로 계속 남아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올 1분기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22.7%다.

낸드플래시 시장을 보면 미국 업체는 더욱 다양하다. IHS마킷 자료 기준 올 1분기 낸드 시장 3위는 웨스턴디지털, 5위는 마이크론, 6위는 인텔로 나타났다. 각각 15.5%, 11.1%, 7.4%로 총 34%다. 1위 삼성전자(36.7%)보다는 작지만, 만일 연합할 경우 대항하는 수준의 행동은 가능하다. 여기에 2위 도시바(17.2%) 인수전에서도 미국 브로드컴 컨소시엄이 유리하기 때문에 미국 중심의 질서가 나타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이처럼 미국은 여전히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적지 않은 존재감을 보인다. 반도체 산업의 원조 선진국인 미국은 적지 않은 수의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그들이 가진 프로세서(CPU) 기술과 결합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 있어 CPU와 메모리 사이의 원활하고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한데, 이에 필요한 역량을 모두 보유한 국가인 것.



최근에는 IBM이 삼성전자, 글로벌파운드리 등과 함께 뉴욕주립대(SUNY) 연구실에서 5나노미터(nm) 미세공정을 개발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물론 메모리반도체 생산에 쓰는 기술은 아니지만, 미국과 IBM이 반도체 분야에서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다시 상기시켜준 일이다. 삼성전자가 참여했다지만, 결국 IBM이 주도했다는 점은 컴퓨팅 기술에 대해 미국이 여전히 패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각인시킨다.

미국은 IT 산업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튼튼하다는 평을 듣는다. 서부의 실리콘밸리와 동부의 실리콘앨리로 대표되는 두 지역에서 관련 업체가 성업하고 있고, 여기에 텍사스주에 기반을 둔 업체들(델 테크놀로지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까지 더하면 규모는 상당하다.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혁신 기업이 계속 있어 반도체 기술도 그만큼 같이 성장하고 있다.

현재 메모리반도체는 ‘슈퍼사이클’로 불리는 엄청난 호황에 있다. 하지만 이 호황이 끝난다면, 거기에 중국 정부의 후원 하에 발을 넓힐 중국 업체들의 공세를 생각하면 더 이상 안주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강하게 나온다. 사실 2013년에도 이미 D램 값 하락 우려가 나왔었다가 SK하이닉스 우시공장의 화재로 공급이 줄어 위기를 겨우 넘겼고, 2015년에도 일각에서 위기설이 있었지만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를 앞세운 서버시장의 증가로 버텨냈다. 하지만 이후 다음에 올 호재가 또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미국이 메모리반도체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가며 존재감을 과시하듯, 한국도 업계와 정부, 학계 모두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