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잃은 신용평가 개혁]⑤美·EU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by김도년 기자
2016.03.22 06:20:00

선진국선 발행사 수수료 공시…신평사도 허가제→등록제 전환
근본적 수수료체계·지정제 등 독립성 강화방안 장기과제로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신용평가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미국은 2007년 신용평가개혁법을, 유럽연합(EU)은 2008년 7월 신용평가 규제법을 도입했다. 모두 신평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금융당국의 규제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 재무부의 신용평가 개혁법안에서는 신용평가를 의뢰한 기업과 신평사 간의 ‘갑을 관계’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놨다. 신평사는 신용평가를 의뢰한 기업에 대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고 신용평가리포트에는 기업이 지급한 수수료를 공시해야 한다.

또 기업이 다양한 신평사로부터 미리 등급을 받은 경우에는 평가 예정 등급을 모두 공시하게끔 했다. 발행기업의 ‘등급쇼핑’을 막기 위한 조치로 평가 예정 신용등급과 최종 신용등급 간의 차이를 공시함으로써 등급쇼핑이 일어난 정도를 시장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독 권한이 크게 강화됐다. SEC 내에 신평사를 감독하는 별도 기구를 설치하고 신평사에 대해 특정 업무에 대한 신용평가를 금지하거나 중지, 등록 취소를 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



미국은 시장에서 신뢰성을 인정받는 신평사의 신용등급을 공적 영역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신용평가사 인정제도(NRSRO)’를 도입하고 있다. 초기에는 정부가 지정한 신평사에만 신용평가 권한을 부여했다가 2007년부터는 등록제로 전환했다. 그 결과 과거 5개에 불과했던 공인 신평사가 2014년 말에는 10개로 늘었다. 이런 사례는 현재 정부가 지정한 곳에만 신용평가업무를 주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4 신평사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참고할 만하다.

EU는 발행기업과 신평사의 대등한 관계를 보장하기 위해 연 수익 5% 이상의 수수료를 제공한 기관의 명단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신용등급을 평가 받으려는 회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수수료 지불 협상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신평사 연구원이 한 기업을 오랫동안 평가할 수 없게끔 하기 위해 보직을 순환하도록 했다. 수석 연구원은 4년, 일반 연구원은 5년 동안만 한 회사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신용평가 수수료 체계 개편 방안이나 신평사 지정제도 등 근본적인 개선책을 찾지 못하고 장기적인 해결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우리나라나 선진국에서나 독립적인 신용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선진국도 근본적인 개선책을 찾지 못하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신용평가 선진화 태스크포스(TF)’가 거창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신용평가업계 안팎에서 제기된 순환평가제, 지정제, 무의뢰평가, 제4 신평사 허용 등 다양한 정책 대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검토한 결과를 시장과 소통할 수 있는 큰 장이 서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