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병묵 기자
2015.08.07 05:11:00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애널리스트는 명실상부한 2000년대의 최고 인기직업이었다. 한때 프로야구 선수보다 연봉이 높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강도와 그에 따른 보상이 적다는 이유로 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업계에서 등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1년까지 증권사 전체 애널리스트의 숫자는 1574명에 달했다. 숫자는 매년 하락곡선을 그리면서 지난 6월 기준 55개 전체 증권사 1028명까지 하락했다. 5년 새 30% 넘게 숫자가 줄어든 셈이다.
증권사에서 일하는 A씨는 “우선 리서치센터가 돈을 버는 부서가 아니다 보니 수년간 이어진 증권업 불황 때 애널리스트 구조조정 대상 1순위였다”며 “요새 업황이 좋아지면서 채용이 조금 늘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 같은 ‘호황’을 누리는 시기는 이미 끝났기 때문에 리서치 업종의 현저한 인력 증가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인력이 줄어들다 보니 업종을 겸직해 맡으면서 업무 강도도 더 세졌다. 대형 증권사의 경우 전자, 자동차 등 섹터별로 담당 애널리스트가 지정돼 있지만 중소형사는 여러 업종을 합쳐 맡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조선업종이 침체되면서 건설, 철강까지 한꺼번에 맡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사람은 줄어들고 일은 늘어나고 악순환의 반복이다. 고용노동부 워크넷의 2014년 기준 직업만족도 조사 결과 애널리스트(투자분석가)는 전체 784개 직업 중 101위를 기록했다. 애널리스트보다 상위에 있는 직업은 일반비서, 사무보조원, 고객상담원 등이다. 실제 연봉보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등 종합적으로 봤을 때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증권사를 떠나 운용사나 상장사 IR부서로 이직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실적 시즌에 밤을 수시로 새는 과도한 업무강도에 질려 차라리 돈은 덜 받더라도 몸은 편한 기업으로 옮기는 게 낫다는 것이다. 새내기 인력 수급도 문제다. 대학생들의 대표 선망직업이었던 건 지난 일이다.
9년차 애널리스트 B씨는 “처음 일을 시작하던 2007년만 하더라도 인기가 높아 경쟁이 상당히 치열했다”며 “2010년 이후 체감으로 봤을 때 후배들을 보면 그렇게 치열하게 들어오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코스피 상장사 IR실에서 일하고 있는 C씨는 2년간 RA를 하다가 지난해 회사를 옮겼다. 그는 “막연히 선망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지망했는데 막상 일해 보니 아니었다”며 “RA 시기야 원래 힘들기로 유명해 잘 알고 있었지만 선배들의 경우 이후 시니어 애널리스트가 된 후 보상을 누렸는데 내 경우는 고생만 하고 그에 맞는 대가를 받지 못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당시 입사 동기는 다섯명이었는데 한 명만 애널리스트로 ‘입봉’하고 나머지는 운용사나 일반 기업, 아예 다른 직군으로 옮겼다고.
이처럼 애널리스트의 위상의 하락에 따라 투자자들의 신뢰도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매수’ 리포트만 난무하고 ‘매도’ 리포트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불만이다. 올해 ‘가짜 백수오’ 사태가 터졌을 때도 내츄럴엔도텍에 대한 ‘매수’ 의견을 냈던 증권사에서는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애널리스트들도 할 말이 있다. 특히 ‘CJ E&M 미공개 실적 유출’ 사태 발생 이후 컴플라이언스 규정이 너무 타이트해져 말을 잘못했다가는 업계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B씨는 “사실 대기업에 관한 매도 리포트를 내면 기관쪽에서 항의가 들어온다. 회사 입장에서도 수세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며 “매도를 직접 말하기가 껄끄러운 상황이다 보니 ‘HOLD(중립)’이 사실상 매도 리포트라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금융당국 규제가 너무 빡빡해지다 보니 어디서 입을 잘못 열면 큰일 난다”며 “최근 현대백화점 임원의 애널리스트 압박 사건에서 보듯이 애널리스트가 요새 뭔 힘이 있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과거는 과거고 여전히 좋은 점이 많은 직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외적인 과거 호황기만 바라보면서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7년차 애널리스트 D씨는 “아무리 예전만 못하다 해도 좋은 직업인 것은 사실”이라며 “또래 직장인들을 보면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일하는데 능동적으로 내 의견을 세상에 제출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만 보고 침울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