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의 비밀]황금알 낳는 거위 상품권…감독 사각지대 방치
by이승현 기자
2014.07.31 07:00:00
상품권 발행 4년새 2.5배 급증..전체 시장규모 10조 추산
백화점·구두·주유· 외식·관광·도서·문화 등 200여종 달해
유통기업 유동성 무제한 조달 가능..악용 가능성 차단해야
[이데일리 이승현 최선 기자] 상품권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찍기만 하면 돈이 된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유효기간 경과, 훼손이나 멸실 등으로 인해 발행업체가 얻는 낙전수입만 한해 1조6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폐해 역시 만만찮다. 한국소비자원에 한해 접수되는 상품권 민원이 2000여건이다. 1999년 상품권법 폐지 이후 15년째 방치돼 있는 상품권 시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0일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조폐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조폐공사가 상품권 발행업체로부터 위탁받아 찍어낸 상품권 규모는 2009년 3조3782억원에서 2013년 8조2794억원으로 4년새 2.5배 성장했다. 올 상반기에는 2조4601억원 어치의 상품권이 발행됐다.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위·변조를 차단하기 위해 조폐공사를 통해 상품권을 발행한다. 관련업계에선 조폐공사를 통하지 않고 발행되는 상품권까지 포함하면 한해 발행규모가 10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상품권의 종류는 백화점·구두·주유· 외식·관광·도서·문화상품권 등 200여종이 넘는다.
백화점 상품권이 전체 상품권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다. 2009년 1조9332억원이던 백화점 상품권은 2013년 6조4056억원으로 4년새 3.3배 성장했다. 전통시장 상품권과 정유상품권도 각각 4.3배, 1.9배 성장했다.
상품권 시장이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각종 폐해를 양산하고 있지만 감독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1961년 제정됐던 상품권법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월, 경기회복을 위한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폐지됐다. 현재는 상품권 표준약관과 소비자분쟁해결기준, 표시·광고사항 고시 등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자율규제에 가깝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업이 법적 근거도 없이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통계열사를 가진 기업이 자금난에 처하면 상품권을 대규모로 발행해 현금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상품권 자체가 금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금융감독원 등 정부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품권법’ 부활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당장 돈줄이 묶이는 발행기업들은 물론 내수경기 회복에 부정적인데다 규제완화 기조에 역행한다며 반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와 관련 2009년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이 상품권법을 발의했으나 기업들의 반대에 부딪쳐 제대로 심사조차 못해보고 법안이 폐기됐다. 상품권 등록제를 도입해 상품권 발행규모와 회수율 공개를 의무화하자는 게 골자였다.
구재군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 분위기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어서 상품권 법제화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며 “불투명한 유통 등 상품권 관리 부재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만큼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