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빈강정' 특례시 "우리 돈으로 청사 옮기는 것도 道 허락 받아야"

by정재훈 기자
2024.10.29 05:00:00

■허울뿐인 특례시 논란
광역시와 달리 재정·인력·사무에 자치권 미비
행정절차에 정부·道 심의 거쳐야 할 부분 다수
수원 공무원 1인당 주민 340명…울산의 두배↑
특례시민 이유로 평등한 행정서비스 못받아
"특례시 특성 맞는 행정체제 갖출 필요성 있어"

[이데일리 정재훈 기자]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지 5년만인 2002년, 경기도청 소재지인 수원시가 인구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 당시부터 수원시가 주도해 ‘인구 100만 대도시’의 행정 권한 확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이로부터 20년이 흐른 2022년 ‘특례시’가 공식 출범했다. 지방자치법 제198조 제2항 제1호에서는 인구 100만이상 대도시를 ‘특례시’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지만 지방자치법 제2조에서는 대도시의 특성을 고려해 추가로 ‘특례’를 둘 수 있는 기초자치단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특례시는 인구 100만명 이상의 대도시를 일컫는 용어일 뿐 광역자치단체보다는 작고 기초자치단체보다는 큰, 두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법적으로 규정된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셈이다.

2022년 1월 특례시들이 행사와 대형 현수막으로 특례시 출범을 알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특례시)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행 제도하에서 4개 특례시들은 행정조직 구성과 재정, 사무에 있어 주민들에게 도시 규모에 걸맞는 자체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권한이 없다. 실제로 특례시는 광역시처럼 완전한 재정 독립성이 없어 상급 광역자치단체인 도(道)에 의존해야 하고 대규모 기반시설 조성 사업 역시 도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고양특례시가 도의 예산을 지원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시청사 이전 계획이 경기도로부터 번번이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은 현행 특례시 제도의 미비점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뿐만 아니라 ‘특례시’는 명칭만 부여됐을 뿐 법적 지위를 가진 용어가 아닌 탓에 4개 특례시들은 공문을 시행할 때는 물론 도로표지판이나 시장의 직인에도 특례시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는 웃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기도 하다.

박진우 수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 100만 특례시가 가진 역량을 고려하면 광역도가 전향적 태도를 갖고 특례시에 많은 권한이양을 시작해야 한다”며 “정부는 특례시가 광역도의 주요 권한을 가져오기 위한 분권협상을 법과 제도에 기반해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례시가 가진 행정 권한의 미비로 인해 벌어지는 주민들에 대한 행정서비스 차별은 더욱 심각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광역시인 울산의 인구는 109만명이지만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수원특례시는 119만명으로 10만명이 더 많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하지만 주민들에 대한 행정 서비스 질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인 공무원 수 부분에서는 울산광역시가 약 7000명, 수원특례시는 약 3500명으로 울산이 수원에 비해 두 배가량 많다. 그 결과 울산광역시는 공무원 1인당 155명의 주민에 대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수원특례시는 공무원 한 명이 울산의 두 배가 훌쩍 넘는 340명의 주민을 담당하고 있다.

공무원 1인당 주민수는 대전(212명)과 광주(189명) 등 타 광역시와 비교해도 수원특례시의 인원이 월등히 많다. 이 역시 지금의 특례시가 광역시의 인구를 넘어서는 규모를 갖췄음에도 행정조직을 자체적으로 꾸릴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다. 결국 수원특례시민들은 광역시가 아닌 기초지방자치단체에 거주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등하게 누려야 할 행정서비스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박재희 지방자치분권연구센터장은 “지방자치제도의 목표는 지역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에 있는 만큼 ‘특례시 지원 특별법’은 특례시가 사무를 이양받아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도시 행정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자율적 행정처리 능력의 배양 및 도시화 특성에 맞는 행정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