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소비 0.4%↑…"계속 지갑 연다" vs "높은 물가 착시"(종합)
by김정남 기자
2023.05.17 07:00:05
미국 4월 소매판매 증가율 0.4%
"시장 예상 하회에도 그래도 견조"
높은 인플레 반영한 ''착시'' 진단도
실적 부진 홈디포, 소비 둔화 방증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버팀목인 소비 지출이 비교적 탄탄한 모습을 보였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에도 소비 지출이 한달새 0.4% 늘었다. 다만 이는 높아진 가격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착시’라는 분석도 나온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 긴축까지 더해져 추후 소비는 그리 밝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굴지의 소매업체 홈디포의 ‘우울한 전망’이 이를 방증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전 월인 올해 3월(-0.7%) 큰 폭 감소했다가, 한 달 만에 반등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0.8%)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소비가 미국 경제를 여전히 떠받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휘발유와 자동차 등을 제외한 근원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6% 늘어났다. 특히 잡화점(2.4%), 무(無)점포 소매점(1.2%), 헬스케어 소매점(0.9%), 식음료 서비스(0.6%) 등에서 소비가 많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스포츠·음악·책 소매점(-3.3%), 주유소(-0.8%) 등은 소비가 부진했다.
미국 경제의 70% 비중에 육박하는 소비는 경기의 척도로 여겨진다. 이번 수치는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덮치고 있음에도 미국 경제는 아직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힌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로니 워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보고서는 추후 소비 전망에 대한 상승세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 지출 호조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높은 가격을 반영한 착시라는 냉정한 분석도 적지 않다. EY-파테논의 리디아 보우소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소매 판매는 완마한 반등을 보였지만 이는 더 높아진 가격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투자회사 에드워드 모야 수석시장분석가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돈을 쓸 수 있고 여름 내내 그렇게 할 것”이라면서도 “이번 소비 호조의 많은 부분은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아직 견조한 소비를 누그러뜨리는 과정에서 경기 하강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할 만한 지점에 있지 않다”며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입수한 데이터를 통해 보면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매파 일색의 연준 내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언급이다.
실제 이날 나온 홈디포의 실적은 추후 소비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홈디포는 올해 1분기 3.82달러의 주당순이익(EPS)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3.80달러)를 웃돌았다. 그러나 매출액은 372억6000만달러로 월가 예상치(382억8000만달러)를 하회했다. 홈디포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이번에도 시장의 매출액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시장 컨센서스를 이렇게 큰 폭 밑돈 것은 2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CNBC는 전했다.
리처드 맥페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주택담보대출금리 상승 △서비스로의 지출 행태 변화 △지난 봄 미국 서부의 추위 등을 부진한 실적의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홈디포는 올해 회계연도 동일점포 매출이 2%~5%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초 보합권 전망에서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에 홈디포 주가는 2.15% 떨어졌다.
모야 분석가는 “홈디포를 둘러싼 거시 환경은 훨씬 더 나빠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는 미국 주요 소매업체들의 향후 흐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월마트(-1.38%), 타깃(-2.28%), 메이시스(-3.53%) 등 주요 유통업체 주가는 이날 모두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