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원 두고 사라진 남성… 편지엔 “이태원 참사, 같이 울겠습니다”

by송혜수 기자
2022.11.08 07:09:25

2017년부터 누적 기부 성금 4억9900여만원 달해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경남 창원시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한 익명의 기부자가 남긴 편지 내용이다. 그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유족을 위해 써달라”며 1000만원을 두고 사라졌다.

2017년부터 신분을 숨긴 채 이웃돕기 등에 5억원에 가까운 거금을 기탁한 한 남성이 7일 오전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 앞 성금함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전달해달라며 1천만원을 또 넣고 사라졌다. (사진=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7일 경남모금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모금사업팀장 자리로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전화번호를 알 수 없는 발신 제한표시가 걸린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 남성은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라며 “지속해서 기부를 해온 사랑의 열매를 통해 성금을 내고 싶다. 사무국 입구 모금함에 성금을 놓아두고 간다”라고 말했다.

전화를 마친 직원은 곧장 모금함에서 편지와 함께 5만원권 현금 1000만원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편지에는 또박또박 힘주어 쓴 글씨로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희생자분들을 애도하며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에게 어떤 말도 위로의 말이 될 수 없기에 그냥 같이 슬퍼하고 그냥 같이 울겠습니다. 약소하나마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유가족분들께 전달되길 바랍니다. 2022년 11월 어느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익명 기부자가 성금함에 남긴 손편지와 1000만원. (사진=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경남모금회는 매일 가장 먼저 출근한 직원이 모금함을 사무실 밖에 내걸고, 퇴근할 때 다시 수거한다. 이를 토대로 추정했을 때 익명의 기부자가 돈을 넣고 사라진 시각은 오전 8시 30분에서 9시 사이다.

또한 돈을 모금함에 넣은 후 발신 제한표시 전화로 알린 점, 손편지 필체 등을 근거로 이 기부자가 그동안 여러 차례 익명으로 고액을 기부했던 사람과 같은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해당 기부자는 지난 2017년 연말 이웃사랑 캠페인을 시작으로 코로나19 극복, 진주 아파트 방화 피해자 지원, 대형 산불 지원,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지원, 수재민 돕기 성금 등 5년 사이에 4억 9900만원의 거금을 기부해 왔다.

경남모금회는 익명 기부자 뜻에 따라 이태원 참사 피해자, 유가족을 지원하는 정부 부처에 성금을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