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행정수도 이전 깜짝쇼', 국민합의부터 하라
by최은영 기자
2020.07.29 05:00:00
다시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거세다. 일각에선 부동산 정책에 쏟아지는 국민적 비판을 돌리려는 궁여지책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행정수도 이전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언제까지 ‘깜짝쇼’로 민주적 절차를 외면할 것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답은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통한 ‘국민 합의’이다.
행정수도 이전과도 같은 국가적인 거대담론은 복잡다기한 경제적 변수와 이해당사자간의 중층적인 갈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우선 경제와 국토개발, 부동산과 도시계획 전문분야의 종합적인 검토와 통찰이 필요하다. 여기에 다양한 변수와 지역주의를 포함한 폭넓은 이해당사자간의 숙의와 공론화가 이어져야 한다. 공론화로 끝인가. 아니다. 전문가의 제안과 숙의와 공론화를 거친 시나리오는 국민합의로 상정되어야 한다. 넬슨 만델라 집권 초기 극심한 혼란과 분열을 딛고 국민적 합의와 정치체제의 변화를 동시에 이룬 남아공의 ‘몽플뢰르 컨퍼런스’는 귀한 참고 사례다.
우리에겐 3년 전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을 위한 ‘공론화와 숙의’의 경험이 있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은 원자력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새 정부는 원전 안전성 확보를 나라의 존망이 걸린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며 원전정책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
다만 이미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는 중단이라는 당초 공약 대신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비용, 전력예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단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로 했고, 이로부터 3개월간 471명 시민참여단이 함께한 열띤 숙의와 4차례에 걸친 설문조사를 거쳐 권고문을 발표했다.
최종 결과는 건설 재개 59.5%, 건설 중단 40.5%로 당초 예상과 달리 1차 조사부터 회차를 거듭할수록 중단에 비해 재개의 비율이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고 탈핵 정책의 국민 합의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만 3년이 지난 지금 신고리 5·6호기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던져 준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착수 시점인 2015년부터 최근까지 약 6년간 235만 명의 고용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확인된다. 연 평균 39만 명으로 현 정부가 한국형 그린뉴딜로 5년간 일자리 66만개를 창출한다는 연 13만 명 고용효과의 3배에 이른다.
신고리 5·6호기의 교훈은 행정수도 논의의 귀감이라는 소신이다. 행정수도 이전과도 같이 국가 운명을 결정지을 중대 사안을 성급한 여론조사와 다수 여당의 힘으로 밀어붙이게 된다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 관점에서 수도이전 공론화와 함께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2015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는 대한민국의 가상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2020년 인구절벽을 맞고, 2033년엔 사람이 살지 않는 지방 도시들이 황폐화되며,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국가파산의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세금과 공공요금이 급증하면서 2100년 총 인구 2000만 명의 대한민국은 국가의 존폐조차 위태로울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평평해지며 도시는 급격히 스마트화 될 것이다. 일하는 방식과 소통의 혁신으로 주거와 사무실, 공동체 생활의 물리적 공간 개념이 확연히 바뀌고 있고, 이는 코로나로 인해 앞당겨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뉴욕, 상하이, 도쿄, 런던, 싱가포르 등 글로벌 대도시들은 국가경쟁력의 전진기지로 금융, 산업, 문화 등 복합적인 인프라를 갖춘 초 연결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수도이전 논의보다 전략국가의 대전제 아래 상정해야 할 수도의 모습이 무엇인지 합의가 필요하다.
세계경제 대국 10위권의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수도이전과 같은 거대한 국토 인프라를 재편하는 결정은 일류국가를 향한 전략적 목표 아래, 충분한 공론과 숙의를 바탕으로 국민합의 과정으로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