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만 바라보는 부품업체들…車수요 감소에 생존 위기

by피용익 기자
2019.11.12 05:19:13

완성차 판매 부진 지속되자 소형 부품사부터 붕괴
대기업만 R&D 투자…중소 부품업체 경쟁력 잃어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현대·기아차에 변속기·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인 A사는 지난해 영엽이익 55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영업이익이 237억원에 달했지만, 3년 만에 4분의 1로 급감했다. 한국GM의 2차 협력사 B사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70억원)보다 30% 급감한 48억원에 그쳤다. 올해 1분기 매출액은 30% 더 줄었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여파에다 국내 자동차 수요가 감소한 게 원인이다.

지난 2017년 일본 자동차 전문지 포린(Fourin)은 한국 자동차산업이 연구개발(R&D) 투자 부진과 강성 노동조합 등으로 인해 오는 2025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그러나 위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내수 판매 부진과 수출 물량 감소가 지속되면서 올해 자동차 생산은 400만대를 밑돌 것이 확실해 보인다.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감소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1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1차 부품업체 수는 831곳으로 전년보다 20개 감소했다. 아직 통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올해도 20여곳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동시다발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어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동차부품업계의 위기는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 부진 탓이 크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완성차 5개사에 매출을 의존하며 미래차 대응에 뒤쳐진 점도 위기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부품업계는 가치사슬로 얽혀있다. 완성차 업체는 1차 협력사와 거래하고, 1차 협력사는 2차 협력사에서 납품받는 구조다. 가치사슬은 3차, 4차로 연결된다. 문제는 부품업체들 대다수가 현대·기아차와 한국GM,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 5곳에만 납품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 부진이 지속되자 부품업체들이 동반 위기를 맞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부품업체들은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와의 거래가 대부분”이라며 “자동차 판매가 잘 될 땐 문제가 없었지만, 판매가 줄어드니까 부품업체들이 먼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래차 대응에 있어서도 현대차가 모듈이나 전장 등을 그룹 관계사를 통해 수직계열화하니까 비계열사의 시장이 줄어든 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부품업체들의 경영 실적은 완성차 업체들의 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자동차부문 영업이익률이 2015년 7.3%에서 지난해 2.1%로 떨어지는 동안 비계열 부품업체 481개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대 중반에서 2% 아래로 하락했다. 더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의 영업이익률은 1.0%까지 내려왔다. 에프엔가이드가 집계한 자동차부품 상장사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같은 기간 0.98배에서 0.66배로 하락했다. PBR이 1배보다 작으면 주가가 청산가치보다 떨어졌다는 의미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매출액 6조원에 달하는 만도 같은 대형 부품업체조차 감원에 나서고 있다면, 중소 업체들은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부품업체들이 국내 완성차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선 해외 업체로 판로를 다각화해야 하지만, 단기간에 쉽지 않은 문제다. 특히 그동안 R&D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도 낮은 상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부품업계의 R&D 투자는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미흡한 수준이다. 2017년 기준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현대모비스 2.4%, 만도 5.6%, 한온시스템 5.0% 수준이다. 이에 비해 해외 업체는 보쉬 7.6%, 덴소 8.8%, 컨티넨탈 10.3% 등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업체들은 R&D 투자가 아예 없는 곳이 대다수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관련 R&D 투자는 대기업이 89%를 차지한다. 중소 업체들은 완성차 업체가 시키는대로 만들면 되기 때문에 R&D에 투자할 필요성조차 못 느낀다”며 “판로를 다각화하려면 현대·기아차 의존도를 낮추고 경쟁력을 키워 판로를 해외로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