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반발에…수출입銀 '조직 축소' 사실상 좌초

by김정남 기자
2019.04.11 06:00:00

자체 혁신안 원점에서 재검토
''지점 13→9개 축소'' 철회 수순

은성수 한국수출입은행장. (사진=이데일리DB 제공)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수출입은행의 자체 혁신안에 제동이 걸렸다. 조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일부 국내지점과 해외사무소 폐쇄안이 지역 사회의 반발로 사실상 철회 수순을 밟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은은 올해 상반기 안으로 창원·구미·여수·원주지점 문을 닫기로 했던 혁신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수은은 늦어도 올해 상반기 안으로는 이를 결정할 계획인데 국내지점 축소안(13개→9개)은 철회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수은이 자체 혁신안을 낸 건 지난 2016년이다. 수은이 조선업 부실 여신 여파로 설립 이후 첫 적자를 보이자 정치권 등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고 이후 기획재정부와 논의해 23개 혁신안을 발표했다. 그 중 남아있는 게 국내지점과 해외사무소 폐쇄안이다.

수은이 조직 축소안 이행을 재고하는 것은 지역 정치권과 경제계의 반발 때문이다. 수은 관계자는 “지점 폐쇄 소식이 전해진 이후 그대로 존속시켜야 한다는 해당 지역의 공문이 대거 접수됐다”며 “지역구 정치인들도 여야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했다.

지역의 논리는 이렇다. 4곳의 지점을 폐쇄하면서 얻을 수 있는 비용절감 효과(약 6억8000만원)가 지역 경제 불황에 비해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수은의 정책금융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이번 3월 국회 때 일부 기획재정위원들의 이같은 언급에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신중히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도 정치권 반발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지점 폐쇄안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며 “국내지점은 존치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걸로 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주장한 국책은행 혁신안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3년 전에는 수은에 부실 책임을 씌우더니 내년 총선이 다가오자 지역 표심(票心)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면서 수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수은은 국내지점 폐쇄를 잠정 보류하면서 해외사무소도 재검토에 착수했다. 수은은 지난해 모잠비크 마푸토사무소 문을 닫은데 이어 올해와 내년 각각 터키 이스탄불사무소와 가나 아크라사무소를 폐쇄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가나 정부의 항의로 이 역시 존속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나는 우리나라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수원국이다. 수은은 기재부로부터 기금을 수탁 받아 운용·관리하고 있다. 수은 관계자는 “가나 정부에서 (기금 지원을 이어나가는 차원에서) 사무소를 철수하지 말아달라는 외교서한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터키의 경우 최근 국내 기업의 인프라 투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 재검토의 이유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