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 '오픈 이노베이션' 65년 뚝심...미국시장 진출 교두보 확보

by류성 기자
2019.04.03 06:00:00

올들어 벌써 美 바이오 제약사 2곳 투자 성사
1954년 창업한 고 김신권 회장
獨 훽스트와 업계 첫 합작법인 설립
김영진 회장, 2년 유럽 파견 근무도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류성 기자] 중견제약사 한독이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분야에서 국내 제약사 가운데 독보적 성과를 잇달아 거두면서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제약업계는 “한독이 오픈 이노베이션과 M&A 분야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배경에는 창립 초기부터 뿌리내린 글로벌 기업문화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독은 이달 미국 바이오벤처 트리거 테라퓨틱스에 5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했다. 트리거 테라퓨틱스는 유망한 후보물질을 발굴해 임상 및 개발에 집중하는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전문업체다. 이에 앞서 올해 초 한독(002390)은 관계사 제넥신과 미국 바이오의약품 개발회사인 레졸루트사에 280억원을 투자, 최대주주(54%)로 올라서면서 미국 시장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1954년 한독의 전신인 연합약품을 창업한 고 김신권 회장은 “변변한 기술력이 없는 제약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진 제약사와의 기술제휴 및 합작투자가 필수적이다”는 경영철학아래 창업초부터 선진 제약사와의 제휴에 적극 나섰다.

특히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을 간파한 김 회장은 회사 설립 3년 만인 1957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독일 제약사 훽스트와 기술제휴를 맺는 성과를 일궈냈다. 그는 당시 혈혈단신으로 독일로 날아가 훽스트 관계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기술 제휴를 이끌어냈다.이듬해에는 연합약품이던 사명까지 한독약품으로 변경하면서 훽스트와의 ‘동거’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한독의 주요 성장전략 가운데 하나인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기업이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와 손을 잡고 내부역량을 공유하면서 신제품 및 서비스를 공동개발하는 개방형 혁신을 의미한다.

김회장은 1964년에는 국내 제약업계 가운데 처음으로 외국제약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독일 훽스트가 한독지분 20%를 인수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당시 국내에는 이렇다 할 제약 기술력이 없었고 낙후된 공장 설비만으로 의약품을 생산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에서 합작투자는 큰 성과로 이어졌다.

한독은 합작사인 훽스트의 우수한 원료를 도입하여 국내에서 자체 상품화를 하면서 국내 제약산업의 선진화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국내 제약업계는 평가한다.



훽스트와의 합작법인을 운영하면서 일찍부터 전수받은 유럽 경영기법은 이후 한독이 M&A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기업성장을 위한 핵심적 사업전략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자양분이 됐다. 특히 현 김영진 한독회장은 경영수업을 받던 시절 훽스트에서 1984년부터 2년 이상 파견근무를 하며 체험한 선진기업의 문화를 나중에 직접 회사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젊었을 때 유럽에서 활발한 M&A등 글로벌 기업문화를 접한 김회장은 평소 “새로운 신사업을 발굴하고 남들보다 빨리 상품화를 시키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모든 과정을 해낸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며 “남들과 손을 잡는 M&A 및 오픈 이노베이션이야말로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경영전략이다”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하며 실행에 나섰다.

한독의 M&A 및 오픈 이노베이션 이력은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가장 화려한 것으로 손꼽힌다. 한독은 지난 1991년에는 프랑스 룻셀과 합작투자해 국내 최초의 의약품 전문 마케팅회사인 한국룻셀을 설립했다. 김회장은 한독의 합작사인 훽스트가 M&A를 통해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는 것을 곁에서 경험하면서 M&A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실제 한독 합작사인 훽스트는 지난 2000년 프랑스 제약사 롱프랑-로라와의 합병을 통해 아벤티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2005년에는 사노피가 아벤티스를 인수하며 대주주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독은 2012년 사노피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면서 합작관계를 청산하고 기존 회사명 한독약품에서 약품을 떼고 한독으로 바꿨다. 한독은 이제 독일 기업과는 무관한 기업이지만 과거 회사초기 독일기업 훽스트와의 합작관계를 상징하는 증거로 사명에 독(獨)이라는 단어만 남겨놓은 셈이다.

한독의 M&A 및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은 창업후 장기간 쌓아온 노하우와 경험에 자금여력이 커지면서 2010년대 들어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김회장은 “글로벌 제약사로의 도약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기업역량 가운데 하나가 바로 M&A와 오픈 이노베이션이다”며 “이런 관점에서 국내 제약업계에서 가장 먼저 선진 제약사와 기술제휴 및 합작사를 설립한 이후 다양한 이분야의 경험을 쌓아온 한독이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한독은 지난 2012년 바이오벤처 제넥신과 지속형 성장호르몬 공동개발을 시작한후 투자를 통해 제넥신의 최대 주주가 됐다. 지속형 성장 호르몬제(GX-H9)는 연내 미국에서 3상 임상을 신청할 예정이다.

2013년에는 글로벌 제네릭 제약사인 이스라엘 테바와의 합작법인인 한독테바를 설립했다. 지난해 흑자로 전환하며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합작사다. 이듬해 한독은 케토톱을 보유한 태평양제약의 제약사업부문을 인수, 일반의약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바이오칩 전문기업 ‘엔비포스텍’에 지분 투자를 하는 한편 일본의 기능성 원료 업체 테라벨류즈를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