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치적 의도 깔린 弱달러…美 통상 압박, 올해 이어질듯"

by김정남 기자
2018.03.02 06:00:00

[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①
긴급진단 '미국發 무역전쟁 암운'
FRB 출신 김진일 고려대 교수에게 듣다
美 제조업, 과거엔 강했지만 지금은 아냐
'러스트 벨트' 회생 위한 약달러·통상 공세
정부 '소득 주도 성장론'은?
새 시도 해볼만…만병통치약 기대는 지나쳐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7일 서울 중구 이데일리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은 철강과 자동차 쪽 백인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김진일(51)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약간 특이한 이력을 가진 경제학자다.

김 교수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의 핵심 기관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10년가량 일했다. 지난 1996년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연준이다. 지금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한 달씩 연준에서 자문관(컨설턴트)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제 이론에 실무 경험까지 갖춘 학자”라는 평가는 김 교수만의 강점으로 꼽힌다. 전공 분야는 거시경제와 통화정책. 특히 미국 경제의 정서에도 밝다.

미국발(發) 돌발악재가 유독 우리 경제를 흔들고 있는 요즘이다. 김 교수는 최근 국내외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이데일리는 지난 27일 오후 서울 중구 본사에서 김 교수와 1시간30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국 연준에서 일한 계기는.

△처음 취직한 곳이 FRB다. 2년 정도(1996~1998년) 일하다가 비자 문제로 미국 버지니아대 조교수로 옮겼다. 이후 2003년 다시 FRB로 와서 8년 일했다. 요즘은 연준에 한국인들이 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거의 없었다.

-미국과 한국 중앙은행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

△인사 정책이다. 한국은행은 공개채용으로 다 뽑고 난 후 각 부서로 나누는 식이다. 미국은 정반대 시스템이다. 각 국장들이 직접 뽑거나, 팀장들이 채용하기도 한다. 한국은 그러면 채용 비리가 불거질 수 있을 텐데, 미국은 이상한 사람을 채용하면 뽑은 사람이 승진할 수 없게 해놨다. 심사숙고 할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역사가 다르니 무엇이 더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이 거세다.

△언젠가 하기는 할 정책이었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지지 기반에 했던 약속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11월까지는 우리나라에 대한 통상 압박이 계속될 거다. 그 카드를 꺼냈다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이려고 할 거다.

-‘러스트 벨트’의 불만은 얼마나 큰가.

△러스트 벨트(미국 제조업의 중심지였다가 제조업의 사양화로 불황을 맞은 지역) 노동자들은 ‘우리가 곧 미국’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영국을 제치고 미국을 최강국으로 만든 게 우리인데, 그게 잊혀졌다는 거다. 주로 철강과 자동차 산업 쪽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60~70대가 그 아래 세대에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 같다.

-소외돼서 기분이 나쁘다는 건가.

△그런 심리를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확 긁은 거다.

-미국 달러화 가치가 이례적으로 약세다.

△(최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약달러가 좋다고 한 발언은) 국내 정치용이다.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다면 실제 자국 제조업 수출에 도움이 되니 이야기할 수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대 진영보다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약달러를 원하나.

△국내 산업이나 백인 노동자를 볼 때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원래 소비의 나라 아닌가.

△제조업 쪽으로 바뀌었다. 그걸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잘 이용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수입물가가 싸지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높으면(강달러) 좋은 게 당연하고, 과거 미국 제조업은 (환율로 도와주지 않아도) 워낙 잘 됐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안 되는 시대다. 희생양을 찾다보니 결국 달러였다.

-요즘 GM 사태도 있다. 이런 돌발악재가 우리 성장률을 떨어뜨릴까.

△그렇다. 특히 한국GM과 관련해서는 정책당국에서 신경을 쓸 것 같다. 자동차와 조선은 고용유발계수가 크기 때문이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소득 주도 성장론은 새로운 시도로 해볼 만한 정책”이라면서도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사진=방인권 기자


-세계 경제가 호황이라는 얘기가 많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언젠가 경기를 반전시켜야 하는데, 아직은 불안하다. 경기 회복세는 여전히 미미하다.

-국내 경제는 어떤가.

△세월호 사태 이후 경제 심리가 떨어질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오래 몇 년간 하락할 줄은 몰랐다. 금방 회복하도록 정책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보면 세월호 이후 5년간 유독 경기가 움푹 패여있었다는 게 드러날 것 같다. 온 국민이 집단적 트라우마에 빠진 것 같다.

-요즘 국내 물가지표가 너무 낮다.

△저도 시내에서 이동할 때 주변을 본다. 중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붐비나 등등이다. 그런데 빨리 물가가 반등할 것 같지는 않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중반대까지는 가능하겠지만, 후반대는 어려울 듯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7%로 보고 있다. 통화정책 목표치는 2.0%다.)

-가계부채는 어떻게 판단하나.

△많이 빌린 사람들이 부자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이 있는데, (1450조원 넘게) 너무 큰 폭 증가해서 걱정스러운 것도 틀림 없다.

-가계부채가 위기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게 진짜 위기인 건 아닌가 싶다.

△그렇다. 미국의 경험을 보면, 미국은 국제수지 적자가 늘 때마다 큰 일 난다, 큰 일 난다 말은 많았지만 아직 괜찮다. 일본의 재정적자는 더 심했다. 현재 1450조원 정도의 가계부채가 위기인 건지 아닌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재인정부는 가계대출을 규제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줄이는 게 목적이라고 밝히고 달성하는 건 좋다. 그런데 주택가격을 동시에 잡겠다고 하면 힘들어진다. 하나의 정책을 통해 여러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주면 좋겠지만, 경제학적으로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가장 정치적인 집단인 청와대에 그런 요구를 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어떻게 보나.

△해보지 않았던 정책이다. 새로운 시도로 해볼 만한 것 같다. 하지만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다.

-후기 케인지언 경제학이 다른 나라에서도 구현됐나.

△개인적으로 석사 논문을 그걸로 썼다. 워낙 일부만 했던 정책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단이 어렵다.

(후기 케인지언 경제학은 학계 내 비주류다. 청와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후기 케인지언 경제학의 영향을 받았다. 유효수요를 늘리는 게 성장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실질임금이 상승하면 소비가 증가하고, 그 결과 노동 수요가 증가해 실업이 감소한다는 논리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표적인 학자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어떻게 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가 너무 차이가 나는 게) 문제인 건 맞다. 정규직들이 양보해야 한다. 특히 사회가 개인화하면서 더 그런 문제가 나오는 것 같다. 노동유연성이 높아져야 한다는 견해에 찬성한다. 결국 그걸 해소하는 건 정치인 것 같다.

-연초부터 일자리 추경론이 나온다.

△일자리 추경을 하는 건 문재인정부의 정책에 맞다고 본다. 다른 정책들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2월부터 추경론이 나오는 건) 정부가 조급한 것 같다. 추경은 (결국 빚을 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누군가는 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게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7일 서울 중구 이데일리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