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 선거' '떡볶이 정치…그때가 왔다

by오현주 기자
2016.03.23 06:17:00

선거철 정치인 ''서민 코스프레''
음식·정치 닮은꼴 키워드로 분석
''뚜렷한 지역색'' ''연대 필수'' ''시간가면 부패'' 등
''단식투정'' 된 단식투쟁 ''정치쇼''로 꼬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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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밥도 안 주고 일만 시킨다.” 세상에 이보다 더 심오한 볼멘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굶는 사람 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배부른 사람이 늘어난 21세기 ‘배둥둥시대’에도 여전히 ‘밥’은 인생에, 비즈니스에, 경제에, 처세에, 철학에, 그리고 압도적으로는 정치에 핵심 키워드다.

정치의 ‘밥’은 선거철 재래시장에서 완성된다. 이제 바야흐로 서서히 막이 오를 것이다. 총선에 출사표를 낸 정치인이 줄줄이 재래시장으로 몰려가는 드라마 말이다.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를 실현하는 때가 다가온 거다. 지금부터 어묵, 떡볶이, 족발, 빈대떡, 칼국수 등 시장통에 즐비하게 늘어선 음식은 모조리 정치도구가 된다. 정치인이 정치도구를 취해 얻으려는 목적은 단 하나다. ‘나는 서민!’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서민의 편!’이란 걸 강조하려는 거다. 여기에는 이런 묵언도 들어 있다. “봐라. 내가 당신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지 않은가.”

식문화연구가로 음식스토리텔링을 전문적으로 해온 저자가 음식에서 나는 정치냄새를 먼저 맡았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 잘 알고 있었다고 믿었던 음식이 낯설어지더란 거다. 저자가 음식과 정치를 굳이 연결한 이유가 있다. 양쪽에는 누가 봐도 선명한 공통점이 있더란 건데. 뚜렷한 지역색이 첫째란다. 넓지도 않은 땅덩어리지만 한반도는 전국 곳곳을 음식으로 가를 수 있는 색이 분명하다. 정치적 성향도 그렇지 않은가. 아마 먹는 음식이 달라서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으로 저자는 두 영역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연대가 필수라는 점도 닮았다. 한식이라면 특히 각양각색의 재료와 양념이 조화를 이뤄야 먹을 만하다고 한다. 혼자만의 개인기로는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이 지점이 정치의 배경과 비슷하다. 연대가 잘못되면? 형편없는 음식이 되거나 소모적인 패거리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한다는 사실은 과학을 곁들인 분석이다. 아무리 신선한 식재료로 조리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음식은 상하게 돼 있는 법. 초년병 시절을 잊는 정치인이라면 오래된 음식과 뭐가 다르겠느냐는 논지다.

책은 저자가 이어놓은 음식과 정치의 접점이다. 음식에 담긴 정치적 의미, 정치에 얹은 음식의 다중성을 파헤친다. 정치란 궁극적으로 ‘국민을 잘 먹이는’ 철학이고 방법론이지 않겠느냐가 바탕이다. 음식과 정치의 언저리엔 당연히 국민이라 불리는 서민이 있다.

▲시장족발 한점 먹었다고 서민이 되나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광고 한편이 방송을 탔다. 밤늦은 시간 일꾼 차림의 한 남자가 재래시장 순대국집을 찾아 국밥을 시킨다. ‘서민스럽게’ 떠먹는 게 하루종일 밥 구경도 못한 사람 같다. 다 먹고 일어서는 그에게 주인 할머니는 손자를 대하는 듯한 말투로 다짐을 받는다. “밥 처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 알겄냐?” 그러곤 두 사람의 감격적인 포옹이 클로즈업되는 가운데 마무리 멘트가 흐른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기호 2번 이명박이 해내겠습니다.”

일하느라 늘 배가 고팠던 수백억원대 재력가인 이 후보는 그날 시장에서 순대국밥 한 그릇을 먹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실제 순대국밥 홍보영상이 이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치의 대반전은 이제부터. 이 대통령 재임 중에 재래시장 곳곳서 벌어진 ‘노점상 단속’이 그것이다. 순대국밥까지 없애진 못했지만 노점상의 떡볶이·어묵 등이 상인들과 함께 사라져갔다.



이 대목서 꺼낸 저자의 주장은 이런 거다. 호텔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몇 점에 와인 한두 잔 마셨다고 서민이 상류층이 되겠느냐는 것. 바로 뒤집으면 이렇다. 고위 정치인이 재래시장에서 파는 족발이나 호떡 한입 베어물었다고 서민의 삶을 이해하겠느냐는 거다.

▲진짜 정치쇼는 ‘단식투쟁’

음식을 무기로 한 정치인의 대표적인 의사표현인 ‘단식투쟁’도 살폈다. 우선 역사적 기록을 면암 최익현(1833∼1906)으로 거슬러 올렸다. 을사조약 이후 대마도로 끌려간 그는 “우리가 준 밥을 먹었으니 일본식으로 머리를 깎아라”는 일본인의 명령을 거부하고 꼬박 이틀간 식음을 전폐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유명한 단식투쟁의 주인공은 김영삼 전 대통령. 1983년 신군부에 맞서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23일간을 굶었다. 이 사건은 한국정치사에 획을 그었다. 이후 갖가지 현안을 두고 정치인이 벌인 온갖 단식투쟁의 서장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단식의 결과는 좀 달랐다. 최익현은 머리를 깎지 않겠다는 의사를 결국 관철했지만, 김 전 대통령의 요구사항은 거의 유야무야됐던 거다. 저자는 이후로도 정치인이 굶어서 문제가 해결된 적은 별로 없었다는 점을 들어 ‘정치쇼’의 허상을 꼬집었다. 목숨을 담보로 ‘나 굶어 죽을 거야’란 비장한 카드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나 먹혔다는 거다. 그러니 날이 갈수록 ‘단식투쟁’이 아닌 ‘단식투정’이 돼가는 건 정해진 수순. 간단하게 증명도 할 수 있단다. 좀 야박하긴 하지만, 실제로 단식 중에 목숨을 잃은 정치인 수는 ‘제로’라는 것. 그들이 단식에 돌입했던 이유만큼이나 확실했던 단식 중단의 명분이 그들을 살렸다. “투쟁은 계속된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자, 다들 골라봐. 난 짜장면!”

이젠 평범한 에피소드가 돼 버린 중국집의 그 현장. “자, 다들 골라봐. 난 짜장면!” 상사의 한마디에 그날의 메뉴는 깔끔하게 통일된다. 저자는 ‘음식이 정치, 정치가 음식’이란 테마는 이처럼 대중의 일상문제이기도 하다는 논지로 영역을 넓힌다. 가령 오늘 누구와 식사를 할 건가를 결정하거나 장소·메뉴를 정하는 문제도 다분히 정치적으로 결정되더란 얘기다.

흔히 밥으로 하는 행사 중에 ‘대형 비빔밥’ 비비기를 유독 강조한 것도 이 연장선상이다. 화합과 통합을 상징하는 대중정치의 신호라는 것이다. 게다가 비빔밥은 여러 개의 숟가락이 동시에 들어와도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몇 안 되는 음식이 아닌가.

음식에 얽힌 정치인의 다채로운 전력을 낯가림 없이 소개한 덕에 책은 선거철이라 더 흥미로운 얘깃거릴 쌓아놓는다. 다만 여기까지다. 순서를 잘 갖춘 코스요리의 질서까진 기대하기 어렵단 소리다. 음식 따라 정치 따라 이리저리 시공간을 옮겨다닌 탓이다. 포석은 깔아뒀다. “식감은 거칠어도 잡곡을 듬뿍 넣은 밥이 건강에는 좋은 법”이라고. 사는 게 다 정치라고 하니, 이해 못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