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11.17 08:13:57
美·潘총장과 김정일 사이… 노무현 딜레마
[조선일보 제공] 정부는 17일 오전(한국 시각) 실시 예정인 유엔총회(제3위원회)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찬성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엔 인권위에서 세 차례,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한 차례 북한 인권결의를 채택하는 동안 모두 불참하거나 기권했다.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날 정부는 찬성 방침을 발표하면서, 발표한 뒤에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발표문은 “이번 결정이 보편적 가치로서의 (북한) 인권신장에 기여하는 것을 기대한다”면서도 “정부는 대북 화해협력정책 기조를 견지하면서 식량권 등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의미가 다른 말을 했다.
외교부 발표가 있은 지 15분후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에 공감을 표시하는 차원”이라며 “제재나 압박을 통한 해결보다는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인권 환경을 개선해 나간다는 정부 정책 기조에 변함이 없다”고 말해 정부 입장이 (기권할 때와) 달라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가 북한에 대한 압박인 유엔결의안에 찬성하면서 정책이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키로 발표하자마자 다시 뒤로 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각종 국정의 실패로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에서 반 차기 총장 선출로 큰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자신이 반 차기 총장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북한 인권결의 문제로 반 총장이 내년 1월 취임도 하기 전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고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엔 사무총장 배출국이 북한과 같은 최악의 인권탄압국에 대한 시정요구를 외면한다면 반 총장은 국제사회에서 면목이 없게 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눈총도 부담이 됐다. 한국이 북한 핵 실험 후 실질적 제재 조치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결의마저 거부하면 역풍이 심각할 것으로 우려했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가 바뀐 것은 전혀 아니다. 따라서 국제사회엔 인권결의 ‘찬성’ 신호를 보내고, 김 위원장에게는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고 양해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