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인 공직 진출 걸림돌 '주식백지신탁', 손볼 때 됐다

by논설 위원
2024.10.18 05:00:00

문헌일 구로구청장이 16일 자진사퇴했다. 국민의힘 소속인 문 구청장은 “구민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돼 매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구청장이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취미활동이냐”고 강하게 비난했다. 문 구청장은 기업인 출신이다. 국민의힘은 2년 전 지방선거에서 구로구청장직을 12년 만에 탈환했다. 이런 자리를 스스로 물러나겠다니 어안이 벙벙한 게 사실이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그의 자진사퇴 결정 뒤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1990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문엔지니어링을 창립했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장도 몇 차례 지냈다. 그는 문엔지니어링 주식 4만 8000주를 가지고 있고, 주식평가액은 170억원에 이른다. 구로구청장은 공직자윤리법이 적용되는 공직자다. 3000만원 이상 주식을 가진 공직자는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 말은 ‘신탁’이지만 수탁기관이 60일 안에 신탁된 주식을 처분한다(14조의4)는 점에서 매각이나 마찬가지다.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지난해 “직무관련성이 인정된다”며 주식을 팔거나 백지신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1,2심에서 모두 졌다. 주식을 팔면 평생 일군 기업의 경영권을 놓치게 된다. 그는 공직과 회사 사이에서 고민했고, 결국 회사를 택했다.



주식백지신탁 제도는 공직자의 이해상충을 막는 장치로 지난 2005년 도입돼 나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역량 있는 기업인의 공직 진출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역효과를 빚고 있다. 2013년 코스닥 상장사인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 대표가 중소기업청장 후보에서 자진사퇴한 것이 좋은 예다. 2017년 중소벤처기업부 초대 장관을 뽑을 때도 벤처기업인들이 모두 고사하는 바람에 정치인 출신에게 자리가 돌아갔다.

예외를 둔 선례가 있긴 하다. 우주항공청법은 임기제 공무원에 대해 백지신탁 예외를 제한적으로 허용한다(14조). 나라 안팎의 인재를 폭넓게 기용하기 위해서다. 기업인의 공직 진출에도 우주항공청법 선례를 적용하면 어떤가. 기업인이 가진 역량과 지식을 공직에 접목할 수 있는 기회를 막는 것이 옳기만 한지 차분히 따져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