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경계영 기자
2021.07.11 09:40:36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K-반도체 발전 전략’엔 있지만 ‘K-배터리(이차전지) 발전 전략’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국내 생산기지 신·증설이다.
지난 5월 당시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의 평택 3라인 신규 라인 착공을 공식화했으며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 생산라인도 추가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를 인수·합병(M&A)하거나 국내 설비 증설 등으로 생산능력을 확충하겠다고 했다.
이와 달리 지난 8일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제조 3사는 별도의 국내 대규모 신·증설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오창 2공장을 짓겠다고 했지만 이는 차세대 제품 개발을 위한 파일럿(시험생산) 설비를 포함해 스마트형 공장 차세대 설비를 구축하는 계획이다. 결국 차별화한 공정기술을 쌓아 이를 해외 생산기지에 전파할 방침이다. 스마트팩토리의 전초기지인 셈이다.
이는 공급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의 최대 수요처인 완성차업체의 요구에 따라 배터리 공장은 전기자동차 공장 인근에 들어선다. 배터리사로서도 완성차업체에 공급하기가 편하다. SK이노베이션의 유럽 생산거점인 헝가리엔 SK이노베이션 주요 고객사인 벤츠 생산기지가 있는 식이다.
더욱이 자동차 3대 시장으로 꼽히는 유럽과 미국은 중국에 비해 뒤처진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 전기차 배터리 생산국 2위로 자리 잡겠다는 목표 아래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에 손내밀고 있다. 미국은 2025년부터 발효하는 신북미무역협정(USMCA)에 따라 역내 생산 비중이 75%를 넘어야 무관세 혜택을 준다. 수출에 의존하기보다 자국 내 생산으로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효과까지 누리겠다는 계산이다.
국내 배터리사가 살 길은 현지 생산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모두 중국과 유럽에 생산 거점을 만들었으며 미국엔 SK이노베이션이 이미 3조원가량을 들여 공장을 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연초 5년간 5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고 삼성SDI의 투자 가능성도 점쳐진다.
우리나라가 배터리 분야에서 할 역할은 결국 연구·개발(R&D) 거점일 수밖에 없다. 8일 LG에너지솔루션이 오창·대전·수도권을 배터리 R&D·생산기술 메카로 키우겠다고 발표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현실에 비해 K-배터리 발전 전략은 아쉬운 대목이 많다. 인력 부족을 호소해왔던 배터리 업계 의견을 반영해 인력 양성 지원책을 내놓긴 했지만 기존 틀을 깰 만한 획기적 대안은 없었다. 첨단학과에 한해 대학 정원 조정이 가능하다지만 원칙적으로 학과 신설이 쉽지 않은 현실은 동일했다. 국내 인력을 붙잡을 유인책도 마땅찮았다.
R&D 거점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결국 ‘사람’이 답이다. 배터리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한 만큼 배터리 분야 인재를 키워내고 이들이 국내 배터리업체에서 역할을 하도록 할 ‘당근’을 제시하는 것은 기업만이 돼선 안 되고, 기업 홀로 할 수도 없다. 배터리가 ‘제2 반도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의 역할을 좀 더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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