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래의 인더스트리]대만 TSMC, 강한 이유

by강경래 기자
2021.05.01 08:00:50



[이데일리 강경래 기자] 이번 주에는 미국 대통령 바이든도 ‘러브콜’을 보낸 회사, 전 세계적인 반도체 이슈 중심에 있는 회사, 대만 TSMC의 경쟁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최근 GM, 포드 등 미국 유수 자동차 업체들이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부족해서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때 바이든이 대만 정부에 연락, TSMC에서 더 많은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등이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했는데요. 이런 이유로 한국 정부도 대만 정부를 찾아가 TSMC에서 들어오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더 생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렇듯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인 반도체, 그중에서도 대만 TSM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만 TSMC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반도체 제조 공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반도체는 300㎜(12인치) 크기 원판인 ‘웨이퍼’를 가공해서 만듭니다. 웨이퍼를 두 달 정도 가공하는 과정을 거쳐 웨이퍼 안에서 반도체를 만들어내는데요. 적지 않은 기간,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입하는 만큼 하나의 웨이퍼 안에서 얼마나 많은 반도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가 반도체 업체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웨이퍼 하나당 반도체 10개를 만들어내는 업체, 그리고 20개를 뽑아내는 업체가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20개를 만드는 업체가 유리합니다. 웨이퍼에서 10개를 뽑아낼 수 있는 업체가 반도체 한 개당 1만원에 판매한다면, 20개를 뽑아내는 업체는 이론상 5000원 혹은 6000원으로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셈이죠. 이렇게 웨이퍼 하나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을 ‘수득률’을 높인다고 합니다.

이렇게 반도체 웨이퍼에서 수득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도체 회로선폭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똑같은 그림을 더 작게 그리려고 하면 그만큼 연필 선의 두께도 얇게 해야 하는 원리입니다. 과거 반도체 회로선폭이 마이크로미터(㎛), 즉 100만분의 1미터(m)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나노미터(㎚)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이는 회로선폭 두께가 무려 10억분의 1미터, 머리카락 굵기의 100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세한 나노미터 공정도 40나노공정, 30나노공정, 20나노공정, 10나노공정에 이어 최근에는 5나노공정까지 더 미세해지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반도체 공정이 진화할수록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40나노공정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1조원이 들어간다면 30나노공정은 2조원, 20나노공정은 4조원, 10나노공정은 8조원, 이렇게 투자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럴 때 삼성전자와 인텔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 여력이 부족한 종합반도체업체, 즉 IDM들은 40나노공정에서 30나노공정, 20나노공정, 10나노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중간에 생산을 포기하게 됩니다.

결국 이런 업체들은 순수 IDM을 포기하고 팹리스, 즉 반도체 개발업체로 일부 전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40나노공정 반도체는 자체 공장에서 만들구요. 30나노공정, 20나노공정 등 더 큰 투자가 필요한 제품은 외주 생산업체, 즉 파운드리에 맡기는 형태가 됩니다. 이렇게 IDM이었던 업체들이 갈수록 팹리스가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이 과정에서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는 파운드리 업체들은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파운드리 역시 큰 업체만 살아남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파운드리도 마찬가지로 40나노공정에서 30나노공정, 20나노공정, 10나노공정까지 계속 투자할 여력이 있는 업체들이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파운드리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투자 여력도 충분한 대만 TSMC 지배력은 갈수록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 점유율은 55.6%에 달합니다. 이는 2위인 삼성전자 점유율 16.4%보다 무려 39.2%포인트가 앞섭니다. 대만 TSMC는 사실상 파운드리 분야에서 ‘넘사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만 TSMC를 통해 최근 전 세계적인 자동차용 반도체 대란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일본 르네사스, 독일 인피니언, 네덜란드 NXP. 이 업체들의 공통점은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을 과점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 업체는 과거 순수 IDM이었다가 최근 일부 반도체 물량을 대만 TSMC에 맡기며 팹리스를 병행한다는 점입니다. 르네사스와 인피니언, NXP는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해서, 대만 TSMC에 물량을 적게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보복소비’와 함께 자동차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더 많은 자동차용 반도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대만 TSMC는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을 줄이고, 대신 스마트폰과 가전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제조로 전환한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난이 벌어지고 심지어 자동차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5나노공정, 3나노공정 투자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결국 반도체 회로선폭 미세화는 계속 진행되고 투자 규모도 더 커질거구요. 그럴수록 대만 TSMC 입지는 앞으로도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만 TSMC는 이렇게 파운드리 업계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해 올해 30조원을 포함해 향후 3년 동안 무려 10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대만 TSMC 입지가 강해질수록 수혜를 보는 업체들이 한국에도 있습니다. 반도체 생산에 있어 파운드리가 75% 정도 차지한다면, 나머지 25%가량은 후공정 패키징 업체들이 담당합니다. 대만 TSMC가 전공정을 마친 웨이퍼를 대만 ASE와 앰코(Amkor), 스필(SPIL) 등 패키징 업체들이 받아 후공정을 담당하는 구조인데요. 한미반도체(042700), 유니테스트(086390) 등은 이들 패키징 업체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합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이슈가 너무나 뜨거운 만큼 다음 시간에도 ‘한국, 반도체 강국인가’라는 제목으로 반도체 관련 내용을 다뤄볼까 합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한 직원이 제주반도체 제품(웨이퍼)을 들어보이고 있다. (제공=제주반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