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청 연출 "순수극·상업극 경계 없이 좋은 작품 만들 것"

by장병호 기자
2020.05.11 05:30:00

지난해 연극계 각종 상 휩쓴 연출가
삼연 맞은 ''언체인''으로 관객과 재회
경계 얽매이지 않는 왕성한 활동
"뜻 맞는 사람들 함께하는 공간 만들고파"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이제 추락만 남은 것은 아닐까요. 하하하. 지난해 유독 작품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매 작품마다 어떻게 난관을 넘을지 고민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네요.”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신유청(39) 연출은 지난해 자신을 향했던 연극계의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소감을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해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그을린 사랑’ ‘와이프’ 등으로 연극계 각종 상을 휩쓸며 주목을 받았다. ‘그을린 사랑’은 제7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 최우수작으로도 선정됐다.

연극 ‘언체인’의 신유청 연출이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신 연출의 행보가 눈에 띄는 또 다른 이유는 순수극과 상업극을 아우르는 왕성한 활동이다. 지난해 연말 국내 초연한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을 연출해 재기 넘치는 무대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삼연으로 무대에 오른 연극 ‘언체인’으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신 연출은 “상업극 작업을 하다 보면 이곳에서는 순수예술을 가미하고 싶어 하고 순수극 작업을 하면 상업성을 가미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며 “순수극과 상업극의 담벼락을 허물고 평탄하게 만드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콘텐츠그라운드에서 개막한 ‘언체인’은 잃어버린 딸 줄리를 찾으려는 마크와 줄리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는 싱어의 이야기를 그린 2인극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로 이뤄지는 서스펜스 드라마다. 신 연출은 초연부터 작품에 참여해왔다.



올해는 대학로 공연계 트렌드로 자리 잡은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했다. 신 연출에게는 첫 젠더 프리 캐스팅 작업이다. 신 연출은 “젠더를 바꾼다고 공연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점이 이번 작업의 큰 발견”이라고 말했다. 또한 “여자 배우들이 표현하는 감정이 조금 더 섬세해서 캐릭터에 대한 다양한 시야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신 연출의 작품은 무대 구성이 인상적이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처럼 ‘언체인’도 무대 뒤편의 소각장과 책상, 의자 등 단출한 무대 구성으로 배우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꾸몄다. 신 연출은 “배우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본을 볼 때도 배우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일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극 ‘언체인’의 신유청 연출이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를 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신 연출은 계원예고 재학 당시 연기에서 연출로 전공을 바꾼 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2008년부터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연극 연출가는 극단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 연출은 특정 극단에 소속되지 않고 여러 작업을 이어왔다.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싶어하는 그의 천성은 대학 시절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학 수업 때 연출의도를 써서 페이퍼를 내면 퇴짜를 자주 맞았어요. 더 쓸 게 없는데도 거절을 당했죠. 연출가로서 의도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한 작품을 만나 몇 개월 동안 충분히 흡족하게 사는 것이 더 기분 좋아요. 나무에 비유한다면 깊이 내린 뿌리도 있겠지만 지금은 뿌리보다 하나의 줄기에서 하나의 열매를 먹고 다른 공연으로 넘어가 또 다른 줄기에서 또 다른 열매를 먹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무언가가 남을지는 조금 더 두고 보면 알겠죠.”

‘언체인’은 오는 6월 21일까지 공연한다. 6월 2일부터 20일까지는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푸드’ 기획 공연인 신작 연극 ‘궁극의 맛’도 선보일 예정이다. 츠치야마 시게루의 동명 만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으로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함께 한 작가 겸 연출가 윤성호가 드라마터그를 맡는다. 신 연출은 “연출가로서 되고 싶은 특별한 이상향은 없다”며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단편영화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연극 ‘언체인’의 한 장면(사진=콘텐츠플래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