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동의 타임머신]삼성 3代..`경영`·`승계`에 관한 생각들

by양희동 기자
2020.05.09 07:08:00

故이병철 선대회장 "자손에겐 강요하고 싶지 않다"
이건희 회장 "21세기 경영자, 스스로 변화 일으켜야"
이재용 부회장 "전문경영인을 위한 환경 마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이날 발표에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자신의 소회와 앞으로 구상도 밝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이 부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경영권 승계)에서 비롯 된 게 사실입니다”라며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특히 그는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라며 4세 승계 불가 원칙을 직접 밝혔습니다.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1938년 대구에서 문을 연 삼성상회(현 삼성물산(028260))를 모태로 한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의 3세 경영을 끝으로 자녀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공개 발언은 재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상당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고 이병철 선대회장도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그의 자서전 ‘호암자전’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고생스러운 기업경영의 일을 자손들한테까지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며 “사업 탓으로 숱한 파란과 곡절을 겪으면서 갖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고민의 이유를 적고 있습니다. 이어 “1950년 6·25동란 중 기업의 회생을 위해 겪었던 갖은 고생과 1960년 4·19 혁명 후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혔고 1961년 5·16으로 모든 경제인은 죄인시 되고 재산의 국가환수 조치가 있는 등 온갖 정치적 수난을 겪어야 했다”며 “이러한 험난한 과정을 끝까지 극복한 사람은 아직도 기업경영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창업자인 이 선대회장에게도 사업은 녹록지 않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1997년 출간한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자신의 후계자가 될 21세기 미래 경영자가 갖춰야 할 조건을 △지혜 △혁신 △정보력 △국제 감각 등 네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이 회장은 “21세기형 경영자는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창조할 수 있어야한다”며 “변화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 내에 전파할 수 있는 철학자의 경륜이 요구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회장을 이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처음 경영자 수업을 시작한 것은 2001년 상무보로 승진해 임원이 됐을 때부터입니다. 그 직전 해인 2000년, 이 부회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부회장의 나이는 32살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이 부회장은 이 인터뷰에서 후계 구도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는 주주로서의 역할만 할 뿐이다. 삼성은 지금까지도 계속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직접 경영하는 것보다 전문경영인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0년 5월, 이 부회장은 자녀에게 더이상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오너 경영이 없는 삼성의 미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지 그 변화를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