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초행길 헤매고 음식그릇 뒤엎고…“배달 알바 리스펙트!”

by김유성 기자
2019.07.15 06:15:00

'퇴근길 음식배달 알바' 체험해봤습니다
우버이츠·쿠팡이츠 이어 배달의민족도 일반인 배달사업 시작
송파동 일대 '실전' 배달체험…2시간에 2건 완료, 8000원 벌어
익숙해지면 시간당 3~4건도 거뜬…안전사고 등 노동자 보호장치는 과제

[글·사진=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픽업 예정 시간은 이미 5분여가 초과한 상태. ‘식당 주인은 화가 나 있을까, 이제라도 포기한다고 말할까.’ 서울 송파구 송파동 일대 아파트 단지와 빌딩 숲 사이를 헤매다 겨우 방향을 잡았다. 음식 픽업지로 향했다. 전기자전거 페달을 밟는 속도도 빨라졌다. 길 가던 사람을 칠 뻔했다. 한숨이 나왔다. 낯선 도시 숲에서 건당 수당 4000원인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는 결코 쉽지 않았다.

지난 12일 본지 김유성 기자가 배달의민족 측이 제공한 배달가방과 헬멧, 개인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숄더백을 건네받고 배달 채비를 하고 있다. 이 용품들은 보증금 5만원을 내면 개인이 휴대할 수 있다. 전기자전거는 배달의민족 측이 체험을 위해 잠시 대여해준 것으로, 실제 개인은 자신의 이동 수단을 갖고 배달해야 한다.
지난 12일 금요일 저녁 시간, 퇴근길 음식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직원들과 입직(入職) 계약서까지 썼고 급여 통장과 신분증 등록까지 마쳤다. 진짜 ‘배민커넥트(배달의민족 커넥트)’ 라이더가 된 것이다.

전기자전거를 끌고 배달 일을 나설 때만해도 자신만만했다. 2000·2005년 택배 픽업·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 덕분이다. 14년이 지났다고는 해도 감(感)은 남아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실전 배달은 달랐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배달·배송지인 송파구 롯데월드 일대 지리를 전혀 모른다는 게 컸다. 학창시절 이후 근 20년 간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본 경험도 없었다. 배달의민족 측이 추천해준 스마트폰 지도 서비스(카카오맵)도 초보자가 사용하기에는 만만치 않았다. 롯데월드 앞에서 5분, 송파구청·송파보건소 근처에서 5분을 허비했다. 식은땀이 났다.

우여곡절 끝에 주문음식 픽업 장소인 경양식집에 도착했다. 주문 접수 후 20분 정도가 지난 때였다. 약속한 픽업 시간보다는 10분이 늦었다. “점주님도 우리 고객입니다”라는 배민커넥트 직원의 말이 생각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음식점 사장님한테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음식을 받아들었다. 소형 피자와 파스타가 포장돼 있었다. 배달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았다.

배달지에 도착해서도 난관은 이어졌다. 잠실 고급 아파트는 입구부터가 달랐다. 경비원들에게 일일이 확인받고 들어가야 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헤매고 있자 지나가던 ‘요기요’(배달의민족 경쟁사) 배달기사가 길을 알려줬다. 엘리베이터 출입구 문을 여는 방법까지 알려줬다. ‘요기요 감사요’였다.

배달은 20분 정도 늦었다. 주문자에게 또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행히 늦었다는 질책은 없었다. 배달 완료를 누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포기 직전까지 갔다 겨우 성공한 배달 일이었다. 4000원을 벌었다.

배달 시작 전(왼쪽)과 배달 후(오른쪽) 배달지 아파트 복도에서 찍은 사진.
◇오토바이·자전거·킥보드…거리 곳곳 배달 기사들

픽업지에서 다른 배민커넥트 라이더를 만났다. 지난주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는 중년의 지역 주민이었다. 송파구 거주민으로 주변 지리에 밝았다. 그는 본인의 자전거로 배달 일을 했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2~3시간 정도 일을 한다고 했다. “운동도 되면서 돈도 벌어 쏠쏠하다”고 했다. 여유가 생기자 길거리가 보였다. 배민라이더(오토바이 기사)와 배민커넥트 라이더(자전거·킥보드 이용 기사), 각종 배달 플랫폼 전문기사들이 넘쳐났다.



이후에도 초보자의 실수는 계속됐다. 두 번째 배달지에서도 “죄송하다”고 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음식이 배달되는 동안 접시가 가방 안에서 뒤집혀 있었다. 다행히 국물이 없는 베트남 음식이었다. 주문자도 별 말이 없었다.

두 번째 배달까지 마치자 시간은 오후 7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시간50여분 동안 두 건의 배달 일을 해 8000원을 벌었다. 시간당 약 4000원이다. 나름 뿌듯했지만 내년도 최저임금(8590원) 절반에도 못 미쳤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많이 (배달) 하는 사람은 한 시간에 4건도 한다”고 했다. 익숙한 동네라면 시간당 3건은 가능해보였다.

왼쪽부터 숄더백, 헬멧, 배달가방. 배민커넥트 기사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물품이다. 단 보증금 5만원을 내야한다. 숄더백에는 휴대용 충전기 등 개인 용품을 넣을 수 있다. 스마트폰에 찍힌 행로대로 가다보면 픽업과 배달이 완료된다.
배민커넥트는 지난 4일 송파·강남·강동·서초구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직은 시범 단계다. 배민커넥트와 계약한 일반 사용자는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 등 개인용 이동기구를 타고 다니며 배달한다. 배달의민족은 2km 이내 음식배달 주문 건을 이들에게 추천한다. 배달 완료 시 건당 4000원의 수입이 올라간다.

배민커넥트는 이 분야(일반인 배달) 후발주자다. 우버이츠가 이미 2014년(국내 서비스 2017년) 시작했다. 지난 5월 쿠팡이츠까지 합류했다. 이들 3개 업체는 도보나 자전거로 가능한 근거리 배달 주문을 일반인 라이더들에게 배분한다. 배달 플랫폼 입장에서는 배달이 몰리는 시간대(점심·저녁)에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일반인은 하루 3~4시간 원하는 요일에 ‘쏠쏠한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

아직 시범 단계이지만 이들의 경쟁은 ‘치킨게임’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초반 플랫폼 장악을 위한 목적이다. 쿠팡이츠는 건당 배달비를 7000원까지 올려놓았다. 가끔은 건당 1만원 파격 가를 제시하기도 한다. 우버이츠는 2년째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 배민커넥트는 전문기사보다 500~1000원 정도 우대해서 배달비(배달완료 시 받는 금액)를 주고 있다.

(디자인=김다은 기자)
배달 시장에 새롭게 나타난 경쟁자에 전문 배달기사들은 크게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다. 배달 속도와 가격 경쟁력 면에서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다. 전문 배달기사들은 한 번에 3~5건의 배달을 처리한다. 성수기 때는 월 500만원 이상 벌기도 한다.

그래도 저녁 시간대 몰리는 배달 주문을 전문기사들이 전부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 예로, 배달대행업계 1위 바로고에 따르면 하루평균 배달 건수(바로고 접수 배달콜 수 기준)는 지난 5월 20만건을 돌파했다. 연초(1월 평균치)와 비교하면 70% 정도 늘어난 수치다. 이중 대부분은 점심과 저녁 시간에 몰려 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라는 생각으로 플랫폼사들은 일반인으로까지 배달업 문호를 개방했다.

이 같은 방식의 일자리에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소비자 보호와 노동자 인권에 취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일종의 초단기 아르바이트로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면서 “사회 취약계층이 이 일에 내몰리기 쉽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달 사고에 따른 안전문제 등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도 동시에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배민신춘문예’ 대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