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유의 웹툰파헤치기]'괴물아기' 이상윤 작가 "인간은 절대 혼자 완성될 수 없죠&quo...

by김정유 기자
2017.08.12 06:00:00

투믹스 이상윤 ''괴물아기'' 작가 인터뷰
사람과 가족 이야기 본질로 다뤄... ''2017 SPP웹툰어워드'' 본선 입상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이상윤(이하 이): 일단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진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소재의 영화나 만화가 꽤 있는데 표현하기에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장 대비를 심하게 하고자 아기와 괴물, 나아가 소녀와 괴물로 콘셉트를 잡게 됐습니다. 호순이의 이미지는 어떤 느낌일까 고심을 많이 했었는데 영화 ‘렛미인’을 떠올리고 ‘그래 이거다’ 싶었어요. 헐리우드 버전을 봤었는데 여주인공이 평소엔 묘하게 신비스럽고 예쁘다가 흡혈귀가 되면 자비 없이 흉포해지는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역시 그게 아이라서 더 임팩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의 주제와 남주인공은 이미 정해둔 상태였습니다. 가출청소년이 이끌어나가는 가족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 여주인공을 확정하게 되면서 지금의 ‘괴물아기’가 확실하게 가닥을 잡게 됐습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가출청소년이 아기를 키운다. 그런데 그 아기가 괴물이다.’ 이거죠.

이: 호순이의 탄생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중에 나올 겁니다. 탄생의 특성상 성장을 빨리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사실 어떤 큰 의미나 상징하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호순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생명체인 것이지요. 그런데 나이를 빨리 먹는다고 또 빨리 노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정도만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마을은 미완의 가족입니다. 내 기준에서 가족이라 할 수 없지요. 그저 모여 살고 있을 뿐입니다. 돈도 안 내도 되고 끼니와 집을 공짜로 마련해 주니까.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서 눌러앉은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당장의 생활이 편하고 안전하니까 서로 어울리는 것이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상황이 왔을 때는 돌변하는 존재들이며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현실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말이죠. 그래서 호순이가 떠나게 되고 김호가 떠나게 되고 시연이가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마을을 통해 가족은 단지 모여서 같이 산다고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것을 갖춘 자들만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될 자격을 갖게 되는 겁니다. 호순이가 마을에서 배운 것이 사람다운 것이라 한다면 사람다운 것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배웠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괴물로서의 모습이 발휘되기 전까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 시간들은 긍정적인 면을 배운 것일 테고 이후 괴물로서의 모습이 발휘되면서 겪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배척, 공격들은 부정적인 면을 배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호순이가 부정적인 면을 배우며 긍정적인 면들의 진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긍정적인 면을 배운 시간동안 사람들과 정이 든 덕에 괴물로서의 식욕을 인간에게 쏟아내지 않게 됐는데 그것은 호순이의 ‘선택’으로 자신의 본능과 갈등을 빚은 부분은 아닙니다. 인간이 만약 호랑이를 키웠는데 호랑이가 같이 사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본능과 갈등을 일으켜서가 아닌 것처럼 말이죠. 정이 들어서 적이나 먹이로 인식하지 않게 된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호순이가 가지고 있는 본능과 후천적 요소가 갈등을 빚은 부분은 단 하나, 작품에서도 언급했던 인간의 정신적 ‘약함’입니다. 호순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 인간으로서의 모습만 유지하도록 강요한 것, 멋대로 자신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배척한 것, 그리고 그것들이 공격성이 되어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호순이의 자기보호본능과 충돌하게 되는 겁니다. 저는 인간의 약함이 어떻게 타인에게 위협이 되어 가는지를 사람들이 호순이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과정에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호순이가 자신의 본능과 후천적으로 학습한 것들이 충돌하기 시작한 원인은 결국 호순이가 아니라 인간에게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고 특히 김호에게 원인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로써 호순이에게 깊은 상처를 준 김호의 방어심리와 이기심, 나약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김호 스스로 이를 후회하고 극복해 주인공으로서 성장해나갈 수 있는 계기로 마련하려고 했어요. 한편 호순은 김호와는 정반대로, 혹은 김호의 과거처럼, 세상을 불신하고 삐뚤어지는 시작점이 되는 겁니다.

이: 비슷한 배경의 콘텐츠들과 차별화를 의식하면서 작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부분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장편의 스토리를 처음으로 혼자 진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이 헤맸습니다. 지인들과 상의도 해보았고 내용도 여러 번 뒤집고 새로 짜고를 반복했어요. 그러다가 결정을 내린 건 그냥 내식으로, 나답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밀고 나가자는 거였습니다. 망해도 내 마음대로 하고 망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잘 할 생각만 했어요. 작품 속에 최대한 몰입하고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녹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바빴습니다. 때문에 ‘괴물아기’가 다른 콘텐츠들과 확실히 뭔가가 다르다, 차별화된다고 여겨질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웃음) 확실한 건 나답다는 것이에요. 이 작품은 완전히 나 자신이고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게 제일 만족스러워요. 그래서 지금 이 질문을 답하면서 생각해보니 다른 콘텐츠들과의 차별화라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티브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제게 영향을 준 작품들은 당연히 존재합니다. 작품의 분위기를 잡고 주제전달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블레이드 러너’, ‘아키라’, ‘기생수’, ‘택시 드라이버’가 영향을 많이 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의 드라마 전달방식에 있어서는 ‘배가본드’, ‘리얼’ 정도입니다.

이: 인간은 혼자서는 절대로 행복할 수도, 완성될 수도 없습니다. 가족을 통해서, 대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어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하는 가족이란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전 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란 뭔가? 그 구성원이 되기 위한 자격은 뭔가?’에 대한 대답을 제 주관을 담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을 여기서 굳이 글로 쓰지는 않겠습니다. ‘괴물아기’를 보면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이: 아쉬웠던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일단 그림이 수작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서 몸이 힘들어요. 그러다보면 지치게 되고 어느 덧 마감은 다가오고 말이죠. 결국 그림 퀄리티가 제 마음에 들지 않은 상태로 다음 컷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아쉽게 마무리된 장면들이 너무 많아요. 왜 그런가 하면 그냥...... 내가 못해서죠. 다른 이유는 없어요. 드로잉 실력이 더 늘어서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실 그림보다 스토리에 대한 부분이 아쉬움이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첫 글, 첫 그림을 맡은 연재다보니 시행착오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글 쓰랴 그림 그리랴 정신이 없습니다. 애초에 기획했던 것과 지금의 ‘괴물아기’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는데 제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즉흥적으로 바꿔버리는 성격이었다는 것을 이 연재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덕분에 큰 틀의 이야기는 바뀌지 않았지만 세부 내용들이 정말 많이 달라져 고생했어요. 서툰 주제에 변덕이 심하고 즉흥적이라서 나중에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 종종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짜릿함도 있긴 하지만.(웃음) 만화가로서 목표는 ‘더 잘하게 되는 것’과 ‘더 잘 벌게 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수입에 관한 것은 제 통제범위를 완전하게 벗어난 운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 잘하게 되는 것만 목표로 삼고 있어요. 잘하고 싶습니다. 더, 더, 더.

이: 느낌만 어렴풋이 잡아놓은 상태라 말씀드릴 게 딱히 없네요. ‘괴물아기’보다는 좀 밝고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을 해보고 싶기도 한데 제 성격이 워낙 무겁고 어두운 편이라 가능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저 답게 가는 게 제일 맞지 않을까 싶어요. 확실한 건 메시지를 담을텐데 그 때가서 가장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주제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이: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지만 재능이 없는 건지 운이 없는 건지 둘 다였는지 20대 내내 데뷔 준비만 오래했어요. 같이 작가를 준비하던 친구나 선후배들이 데뷔해서 치고 나갈 동안 전 여전히 데뷔의 문턱에서 미끄러지고 있었죠. 본격적으로 원고를 만들어 업계의 문을 두들기기 시작해서 데뷔까지 걸린 시간이 총 6년이었어요. 출판만화에서 4년, 웹툰으로 전향해 2년. 그나마도 데뷔작은 스토리를 받아 그림작가로 데뷔했으니 ‘글·그림 이상윤’의 작품이 나오는 데까지는 9년이 걸린 셈이죠.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 제가 가진 재능이란 건 버티는 능력이었던 것 같네요. 재능인지 멍청함인지 잘 모르겠지만. 데뷔작은 창의인재지원사업 때 이종규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작품을 함께 할 것을 제안 받았고 그렇게 해서 만든 작품이 ‘인형의 집’이었습니다.

롤모델인 작가는 일본의 다케히코 이노우에 입니다. ‘슬램덩크’, ‘리얼’, ‘배가본드’의 작가이기도 하죠. 원래도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였지만 이 사람이 나온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면서 완전히 빠지게 됐어요. 작품에 임하는 자세와 작가로써의 마인드가 정말 감동적이었고 제게도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어요. 제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방식에서 알게 모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찾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너무나도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끝까지 열심히 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 SPP 웹툰어워드’ 행사 당시 이상윤 작가의 ‘괴물아기’가 발표되고 있다. 괴물아기는 이 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다. (사진=웹툰인사이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