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심청은 없다 '반항' 심청이 있을 뿐
by김용운 기자
2016.03.23 06:16:30
혁명 아닌 야망 갈구한 ''홍길동전'' 등
고전 흥미롭게 비틀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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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의 고전
이진경ㅣ520쪽ㅣ글항아리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마음씨 착한 딸은 눈먼 아버지가 동냥젖으로 자신을 키운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기회가 생겼다. 대신 자신은 바다에 몸을 던져야 한다. 결단을 내렸다. 다행히 용왕의 도움으로 살아나고 왕후가 돼 아버지와 재회한다. 순간 아버지는 ‘내 딸을 보자’며 눈을 떴다. 조선의 고전소설인 ‘심청전’을 모르는 한국사람이 있을까.
‘심청전’의 주제는 심청의 지극한 ‘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눈먼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심청은 조선시대 윤리의 근간이었던 충효 중 효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꼽혔다. 하지만 심청이 과연 효녀였던가.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자. ‘심청전’은 자식이 저지를 수 있는 불효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홀로 있는 아버지를 두고 자식이 먼저 죽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심청전’에서 심청은 장승상 댁 부인에게서 공양미 300석을 받아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굳이 인당수에 뛰어들기를 자처한다. ‘반항’이었던 것이다.
‘철학과 굴뚝 청소부’ ‘노마디즘’ 등으로 유명한 저자가 한국의 고전소설 비틀기에 나섰다. 그간의 관점과는 다른 방향에서 시도한 해석이다. ‘숙영낭자전’ ’흥부전’ ‘허생전’ ‘전우치전’ 등을 고전 전반을 망라했다.
조선 중기 허균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은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 활빈당을 만들어 조정을 농락하다가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율도국을 건설한다는 줄거리다. 조정의 권위를 무시한 데다 왕이 된다는 내용은 혁명의 도모로 읽혔다. 그렇지만 저자는 ‘홍길동전’도 뜯어보면 모두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호부호형’을 못해 괴로워하던 홍길동은 정작 그 본질인 신분제 철폐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오직 아버지와 왕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을 뿐.
저자가 볼 때 ‘심청전’은 도덕적 명령에 대한 지나친 복종으로 그 명령 자체가 당혹스럽게 된 역설적 비판의 텍스트다. 또 ‘홍길동전’은 다른 세상을 꿈꾼 것이 아니라 기존 세계질서 속에 편입하려 한 갈망이었다. 촘촘한 문장 뒤에 국문학 연구의 성과를 탄탄하게 덧댔다. 제목은 ‘파격’이지만 훗날 ‘정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