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한화투자증권의 거꾸로 된 '희망퇴직'

by김도년 기자
2013.11.25 07:50:00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부양가족이 없는 직원을 먼저 희망퇴직 대상자로 올리겠습니다”

구조조정 전운이 감돌고 있는 한화투자증권(003530)의 주진형 사장은 최근 일선 영업점 직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희망퇴직 대상의 우선 순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소속 직원이 사장과의 대담 내용을 기록, 인터넷 메신저로 유포하면서 주 사장의 발언은 단숨에 여의도 증권가의 화제가 됐다.

왜 화제가 됐을까. 메시지의 톤이 다소 과장되고 악의적으로 전달된 측면은 있지만, 이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최고경영자(CEO)의 위기관리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담겨 있기에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것 아닌가 싶다.

미혼자와 부양가족이 없는 직원을 먼저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겠다는 발상은 대학을 막 졸업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혼을 하지 못한 젊은 직원들부터 퇴직시키겠다는 의미다.

부양가족이 없어서 직장을 잃어도 부담이 덜하지 않겠냐는 계산이 있었겠지만, 사용자로서 근로자들에게 저런 발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실정법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경솔한 행동이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 7조에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혼인과 임신 여부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게끔 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못한 근로자는 결혼을 한 근로자보다 영업을 더 못하는가? 아니면 평소 근무태도가 더 태만한가? 이들을 차별해야 할 그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없을 것이다.

구조조정으로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지만,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동기부여 방법을 묻는 질문엔 “내가 왜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임금이 깎여 생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직원이 나오면 영업력도 떨어질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물어도 “대안은 본인이 가져오라, 왜 자꾸 나보고 가져오라고 하느냐”고 응수한다.

직원의 꺾인 사기를 독려하는 일이 대표이사의 일이 아니면 누구의 일일까. 영업력 저하를 우려하는 일선 직원들에게 도리어 호통으로 응수하는 것이 과연 리더의 ‘품격’에 맞는 일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렇다. 떨어진 사기도 직원들이 스스로 독려하고, 영업력 저하의 대안도 직원들이 스스로 내놓는다면, 고액 연봉을 받는 대표이사야 말로 필요없는 자리가 아닐까? 조직에 살아남기 위해, 영업 현장에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혼기를 놓친 미혼 청년들보다 말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자산 규모에 비해 임원이 많은 ‘옥상옥(屋上屋)’ 구조로 유명하다. 규모가 더 큰 하나대투증권이나 대신증권 소속 임원 수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일선 영업점에 영업력을 회복할 수 있는 대안도, 떨어진 사기를 독려할 수 있는 대안도 구조조정의 방향을 바꾸면 해결될 일 아닌가. 일은 하지 않으면서 고액 연봉만 챙기는 사람부터 정리한다면 조직의 기강은 스스로 잡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