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보다 더 싼 슈퍼마켓” 롯데슈퍼의 실험

by이학선 기자
2012.11.05 07:55:47

야채값 상시저가정책 시행후 고객 늘어
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도 가세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지난 1일 오후 한우 반값 할인 행사로 북적인 서울 동대문구 한 대형마트. 한우를 사려고 20m 가량 길게 늘어선 줄 사이로 구상회(32) 롯데슈퍼 야채팀 상품기획자(MD)가 식품 판매대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양배추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곧바로 스마트폰에 뭔가를 입력했다. 그리곤 고구마, 배추, 무 등을 파는 다른 판매대 앞에서 비슷한 행동을 반복했다.

“양배추 점오 2680, 깐마늘 삼백 2480, 풋 1650….”

그의 스마트폰 메모장에는 알듯 모를듯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 대형마트가 양배추 0.5kg 한통은 2680원, 깐마늘 300g은 2480원, 풋고추 한봉은 1650원에 팔고 있다는 기록이다.

롯데슈퍼는 이런 식으로 매주 목요일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GS수퍼마켓 등의 가격을 조사해 자신들이 파는 야채가격을 조정한다. 올해 3월 시금치, 콩나물, 고추, 오이 등 야채 20개 품목을 1년간 경쟁사보다 더 싸게 팔겠다고 선언한 이후 정례화된 시장조사를 해왔다.

구상회 롯데슈퍼 야채팀 MD가 한 대형마트에서 야채값을 조사하고 있다.
“자주 가는 곳에선 제가 왜 왔는지 알죠. 그렇다고 대놓고 나가라고 하진 않습니다. 서로 사정을 아니까요. 그 덕에 몇몇 점장과는 친분도 생겼구요.”

구상회 MD는 가격조사를 제지당한 일은 없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말했다. 간혹 너무 눈치가 보이면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가격을 직접 불러주거나 현장에서 핸드폰으로 녹음한 뒤 사무실에 들어가 한꺼번에 정리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모아진 가격정보는 롯데슈퍼가 경쟁사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야채를 판매하는 토대가 된다. 롯데슈퍼는 이날 야채팀 MD들이 현장에서 조사한 가격을 바탕으로 이틀 뒤인 지난 3일 깻잎·오이·호박·당근 등 8개 품목의 가격을 내리고 시금치·풋고추·양파 등 6개 품목의 가격을 올렸다. 전체적으로 경쟁사에 비해 평균 7.9% 저렴하게 야채가격을 책정했다고 한다.

이 같은 시도는 대형유통업체 사이에 가격인하 경쟁을 불러왔다. 롯데슈퍼가 야채에 대한 상시저가정책을 발표한 직후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가 야채가격 인하을 선언했다. 그 결과 현재 롯데슈퍼의 야채가격은 이마트와 홈플러스보다는 2~3% 비싸지만 롯데마트와 GS수퍼마켓에 비해선 6~9% 정도 저렴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김종운 롯데슈퍼 야채팀장은 “유통업체 전반적으로 야채가격을 잡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면서 최근에는 업체간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이 됐다”며 “건전한 경쟁이 소비자들의 이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약 7개월간 계속해온 롯데슈퍼의 실험은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야채품목에선 이익이 줄거나 손실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고객들이 롯데슈퍼를 찾는 계기로 작용했다. 상시저가정책을 펴기 전인 지난 2월 롯데슈퍼에서 야채를 구매한 고객은 220만명이었으나 6월에는 244만명, 10월에는 251만명으로 늘었다. 고객이 구매하는 품목에서 야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27%에서 지금은 31%로 높아졌다.

송영탁 롯데슈퍼 상품총괄부문장은 “언제 방문하더라도 시세보다 저렴하게 야채를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면서 “지금의 상시저가정책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