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잠길까봐”…침수피해 상인·판자촌 주민의 한숨[르포]

by김영은 기자
2023.06.27 06:45:00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강남 구룡마을 가보니
동네 상인들끼리 카톡으로 ''비상 연락망'' 만들어
판자촌 주민들 “모래주머니 요청밖엔 대비책 없어”

[이데일리 김영은 수습기자]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해서 걱정이야. 작년에 수해를 겪었지만, 올해라고 안 일어날 법은 없잖아.”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사진=김영은 수습기자)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만난 귀금속 업체 주인 이재열(61·남)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 쏟아진 비로 이씨의 가게는 허리까지 물이 들어차며 귀금속 서랍장과 소파 등을 5000만원을 주고 교체해야만 했다. 이씨는 “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지난주 토요일부터는 상인들끼리 부재 시에 서로 알려줄 수 있는 비상조직망을 카카오톡으로 만들었다”며 “우리끼리 물막이판 잘 설치했는지 서로 점검하고, 경각심을 가지라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 서울 등 전국적으로 큰 비가 예고되면서 이씨와 같이 지난해 침수 피해를 본 사람들의 시름도 깊어져 가고 있다. 기상청은 27일 오전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20~40㎜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린다고 전망했다. △제주 50~150㎜ △수도권·강원내륙·충청권·남부지방·서해5도·울릉도 등 30~100㎜ △강원 동해안 10~50㎜ 등이다.

이 시장에서 7년째 견과류 장사 중인 강모(57·여)씨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갑자기 쏟아진 비로 가게 앞에 진열해 놓은 땅콩, 과자 등이 물에 잠기면서 3000만원을 손해를 봤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구청으로부터 500만원을 지원받은 게 고작이었다. 강씨는 “구청이 하수구를 넓혀서 물이 좀 더 잘 빠지게 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비가 많이 올지 모르는 게 제일 걱정”이라며 “올해도 침수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마지막 남은 판자촌인 강남구 구룡마을도 예고된 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구룡마을 8지구에 거주하는 50대 중반 조모씨는 “어차피 비닐, 나무로 된 벽이라 아래부터 벽이 썩어들어가서, 튼튼하지 않다”며 “지금 장마 시작하면 지난해처럼 똑같은 피해 벌어질 텐데 동사무소에 주민들이 모래주머니 요청한 것 말고는 대비해둔 게 없다”고 했다.



구룡마을 주민 이모(65)씨 역시 “지난해 수로에 물이 넘쳐서 집까지 물이 들어왔고, 신발장 변기에서 물이 역류해 완전히 복구하기까지 6개월 걸렸다”면서도 “올해 특별히 대비해 둔 것은 없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룡마을에서 35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70대 장모씨는 “지금도 어떻게 대비할지 모르겠다”며 “도랑에서 물이 치고 내려오는데 대비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홍수 피해에 대한 상인과 주민의 불안을 잠재울 대안을 지자체가 다방면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집중 호우 예보 기간만이라도 주민과 상인에게 물막이판 지급 등 도구 전달뿐 아니라 대면해 설치 시기와 방법을 설명하는 등 강도 높은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는 지역민의 우려를 낮출 해법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구룡마을을 담당하는 동사무소에서 모래 마대가 고갈됐다고 들어 지난 23일 2차로 모래 마대를 가져다 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모(65)씨가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개천 옆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김영은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