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격정토로 "유엔 뭐하나…이럴거면 해체하라"(종합)

by김정남 기자
2022.04.06 07:29:37

젤렌스키, 유엔 안보리서 화상 연설
"러, 안보리 상임이사국서 퇴출해야"
아무런 역할 못하는 유엔 역시 저격
"헌장 1조 못 지키는데 왜 존재하나"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유엔은 문 닫을 준비가 됐는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실시간 화상 연설을 통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실시간 화상 연설을 통해 부차 대학살에 대해 보고하면서 “국제법의 시대는 끝났는가”라고 되물으며 이렇게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엔을 정면으로 비판한 건 우크라이나 사태가 격화해도 유엔은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헌장 1조 1항은 △국제 평화·안전 유지 △침략 행위 진압 △국제 분쟁 조정·해결 등으로 설립 목적이 명시돼 있다. 전쟁이 나면 유엔은 이를 막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껏 유엔이 한 제재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냉정한 진단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러시아 침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저질러진 가장 끔찍한 전쟁 범죄”라며 “이슬람국가(IS) 같은 다른 테러리스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맹비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레이드마크가 돼 버린 국방색 셔츠 차림에 수염이 덥수룩한 채 연설에 등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당한 부차, 이르핀, 디메르카, 마리우폴 등에서 희생 당한 민간인 시신들을 90초 분량 영상을 통해 보여주며 러시아군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그의 말투는 격정토로에 가까웠고, 각국 외교관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들은 수류탄 폭발로 자신의 아파트와 집에서 살해 당했다”며 “러시아군은 오로지 재미로 자동차 안에 있던 민간인들을 탱크로 깔아 뭉갰고 민간인들의 팔과 다리를 자르고 목을 베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여성들은 자녀들의 앞에서 성폭행 당한 뒤 살해 당했다”며 “고의로 아무나 죽이고 온 가족을 몰살했고 시신을 불 태우려 했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면서 러시아를 안보리에서 퇴출 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반대할 경우 유엔 차원의 제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예컨대 국가간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유죄로 판결하더라도 그 집행은 유엔 안보리가 맡는다는 점에서 실제 처벌은 불가능하다. 러시아가 반대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침략 당사자이면서도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의 손발을 묶을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유엔의 태생적인 한계는 무용론으로 이어지는 기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안보리가 보장해야 할 안보는 어디에 있나”라며 “부차에는 그것이 없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 “헌장 1조도 지키지 못하는 유엔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안이 없다면 다음 선택지는 (안보리를) 해체하는 것밖에 없다”며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