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株소설]요즘 주식시장은 채권시장에 반항하고 있다?

by고준혁 기자
2022.03.31 03:00:00

10년 실질금리 50bp 올랐는데도 성장주 20%↑
주식시장, 연준 긴축에도 "경기 연착륙" 믿는듯
3월 50bp 인상설, 그대로 5월로…"불확실성 여전"
초반에 세게 or 경기 확장 때 등 긴축방법 밝혀져야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미스터 마켓의 힘은 막강합니다. 미국 경기가 연착륙하지 못할 거란 래리 서머스 교수의 말도, 할 거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인 재닛 옐런 의원의 말도 못 믿겠다면 시장의 움직임을 보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스터 마켓이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한 번에 못 맞출 때도 있고 심지어는 틀릴 때도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요즘 주식시장이 채권시장에 “반항하고 있다”(defying)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식시장이 틀릴 가능성을 전했습니다. 첨예하게 논쟁이 벌어지는 지점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이 경기를 훼손하는 정도가 얼만큼일까”입니다. 연준은 이제 긴축에서 한 발 뗐을 뿐입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전문가 집단인 기관 투자자들의 비중이 대부분인 채권시장의 판단이, 개인 투자자들이 끼어 있는 주식시장에 비해 보통 ‘옳은’ 것으로 보는 나이브한 통념이 있습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주식은 금리를 따라 반응합니다. 금리가 선(先), 주식이 후(後)입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달 초 1.7%대에 있던 금리는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2.5%를 육박, 약 80bp나 상승했습니다. 지난 2019년 5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금리와 채권은 반비례하므로 단기간 국채 ‘팔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경제가 활황일 때를 제외하곤 금리가 이렇게 가파르게 오르면 주가는 하락합니다. 그런데 미국 주식시장은 상승세에 올라탔습니다. 최근 최저점인 지난 14일(현지시간) 이후 25일까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는 8.9%가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나스닥은 12.6%나 올랐습니다.

금리가 이렇게 빨리 오르면 특히 성장주에 안 좋습니다. 지금보단 미래를 팔아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는데, 금리가 오르면 미래에 대한 평가를 박하게 할 수밖에 없어서입니다. 그럼에도 S&P500보다 성장주가 많이 모여 있는 나스닥 상승률이 더 높았습니다.

금리에서 인플레이션을 제거한 실질금리가 오르는데도 성장주가 상승했단 점은 더욱 미스테리한 점입니다. ‘진짜’ 금리가 오르는 것인데도 성장주가 오히려 좋았기 때문입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년 만에 기준금리를 25bp 올린 지난 16일 이후 웰스파고가 모아놓은 성장주 지수는 이날까지 20%가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10년물 실질 금리는 -1.0%부터 -0.5%까지 50bp가 올랐습니다.
미국채 10년물 금리 추이. (출처=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일각에선 주식이 채권에 반항하는 것을 넘어 리드하고 있단 관측도 나옵니다. 장단기 금리차를 기준으로 보면 연준의 너무 빠른 금리 인상 계획에 2년물은 폭등한 반면 10년물은 하락했는데, 주식시장이 오른 뒤부터 10년물이 상승 추세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주식을 본 채권이 “경기가 그렇게 나쁜 게 아닌가?”란 의문을 품었다는 가정입니다.

주식시장이 채권시장을 따르지 않는 건, 향후 미국 경기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로 보입니다. 현재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오버킬(Overkill)의 ‘정도’입니다. 오버킬은 물가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수요를 억제해 경기를 냉각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연준이 지금의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어쩔 수 없이 미국 경기를 훼손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정도가 심하지 않는다는 점을 믿는단 겁니다.

증거도 있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3월 공개연방시장위원회(FOMC) 이후 파월 의장은 가파른 금리 인상에 미국 경기가 죽는 게 아니냔 질문에 “경기는 매우 강하며 노동시장은 매우 타이트하다”고 답했습니다. 지금 노동시장의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떠나간 노동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공급 측면의 문제라, 긴축을 해서 수요를 줄이면 오히려 균형상태가 맞춰진다는 것입니다.



한 자산운용사 매니저는 “파월은 지금 상황에서 수요가 둔화된다 해서 생산활동이 제약되는 게 아니다란 주장을 설득력 있게 잘 설명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3월 공개연방시장위원회(FOMC) 점도표 및 장기연방금리(롱거런). (출처=연준)
3월 FOMC는 누가 봐도 매파적(hawkish)이지만, 비둘기(dovish)의 속내를 감춰 둔 점이 발견됐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연준은 올해만 7번, 내년은 4번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점도표를 통해 주장했지만, 장기연방금리인 롱거런은 2.5%에서 2.4%로 낮췄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롱거런은 현 경제 체력에 맞는 적당한 금리 수준을 말하는데, 이를 10bp 낮췄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 경기가 약해졌단 의미입니다. 지금은 강하게 금리를 올릴지라도 향후 속도를 낮춰야 할 명분을 만들어놓은 셈입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당장 연준의 공격적인 물가 대응 가능성과 함께 낮아진 성장잠재력(롱거런 하향)으로 금리 인상이 이뤄지더라도 그 한계 역시 낮아질 수 있단 사실이 동시에 확인됐다”며 “중장기적인 시계에선 향후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단 유보적 접근이 적절해 보인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연준이 보장하는 경기 연착륙에도 주식시장이 섣부른 판단을 내렸단 주장이 제기됩니다. 래리 서머스 교수나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 같은 투자 구루들이 “연준이 경기 연착륙 못 시킬 것”이라는 등의 반박하고 있지만, 이게 핵심 이유는 아닙니다. 연준이 경기 연착륙을 시킬지에 대한 어렴풋한 윤곽이 3월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한 증권사의 연구원은 “좀 과하게 말하면 3월 FOMC 이후 사실 확실해진 게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시장이 너무 앞서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연방기금금리 선물 가격에서 유추하는 5월 FOMC에서 25bp와 50bp 금리가 인상될 확률. (출처=시카고상품거래소)
3월 FOMC 전 자주 등장한 논쟁은 ‘한 번에 기준금리 50bp 인상’이었습니다.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에서도 일주일 간격으로 25bp냐 50bp냐를 두고 왔다 갔다를 반복했습니다. 지금은 5월 FOMC에서 같은 논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선물 시장은 일주일 전만 해도 50bp 인상 확률을 43.9%로 봤다가 지금은 68.3%로 보고 있습니다. 또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불확실성이 해소된 게 아니란 얘깁니다. 5월 FOMC에서 25bp를 올려도 연준이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7번으로 찍은 이상(남은 FOMC 회의는 5번) 50bp 금리 인상 논란은 지속될 것입니다. 점도표는 지워지지 않는 펜(pen)이 아닌 연필(pecil)로 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준은 “긴축을 강하게 해야 한다”는 의지만 보였을 뿐이지 “올해 어느 시점에 어떻게 하겠다”라는 말은 안 했습니다.

공급망 차질이 완화되면서 2분기를 기점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소 하향 안정화될 거란 주장이 제기됐지만, 예상치 못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 가격이 200달러를 넘길 거란 얘기가 나옵니다. 실현되면 50bp 금리 인상은 1회로 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판단이 다소 이르단 평가가 있는 이유입니다. 연준의 구체적인 금리 인상 계획,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잠정적 결론 등 알려진 모르는 것(Known Unknown)을 확인하지 않았는데도 미스터 마켓이 왜 이렇게 성급하냔 것입니다. 아예 모르는 모르는 것(Unknown Unknown)도 아니라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냉정한 승부사라면 오히려 확인을 하고 베팅할 겁니다.

원래는 왕비둘기로 분류되다가 강경 매파로 돌아선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초장에 잡아버리기’란 긴축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는 “역사는 (긴축의) 상황으로 빠르게 이동할수록 인플레이션을 목표치로 되돌리고 경제 호황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하반기에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시장과 경기를 그나마 덜 해치는 긴축은 경기 순환주기에서 둔화가 아닌 확장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은택 연구원은 “불라드가 주장하는 금리 급등에도 증시가 견조했던 때(1994년)는 갑자기 금리를 올렸기 때문이 아닌 당시가 경기 확장국면이었기 때문”이라며 “ISM 제조업 지수 등 경기선행지수를 고려할 때 연준은 올 상반기가 아닌 하반기에 긴축 강도를 올려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