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미완으로 그친 '박정희 우표'

by허영섭 기자
2017.07.21 06:00:00

끝내 박정희 기념우표는 무산되는 분위기다. 올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는 9월 선보일 예정이던 우표발행 계획이 막판에 취소되고 만 것이다. 이로 인해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이 제기되는 사태까지 이르렀지만 지금 상황에서 결정이 번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우표발행 계획이 처음 공개된 이래 찬반 논란이 이어지긴 했으나 설마 이런 식으로 끝나리라고는 미처 내다보지 못했던 결말이다.

이 기념우표 발행이 지난해 6월 우정본부 우표발행심의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돌이켜보게 된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가 들어서고 최근까지도 당초 계획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이 우정본부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결국 방침이 바뀜으로써 다시 심의위원회 논의에 부쳐진 끝에 기존 결정이 철회된 것이다. 이처럼 우표발행 계획이 도중에 번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니,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비단 기념우표뿐만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취지의 다른 사업들도 전반적으로 난관에 부딪친 모습이다. 탄신제와 기념음악회, 다큐멘터리 제작 계획 등이 전면 취소됐고, 올해 착공하려던 유물전시관 건립계획도 일단 연기된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와 경북도, 그리고 박정희 기념재단 등이 추진해 온 계획들이다. 앞서의 기념우표도 구미시의 제안으로 추진된 사업이라고 한다.

이러한 지경에 처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지 어느덧 40년 가까이 지나도록 우리 주변에 새겨진 그의 흔적은 깊고도 견고하다.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를 일으킨 공적은 뚜렷하지만 장기집권을 위한 독재정치로 인권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피해 입은 당사자와 가족들의 상처도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주인공이면서도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더구나 새 정부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계승하는 반면 다른 정권들과는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평가에 대해 인색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공식 후보로서의 첫 행보로 현충원을 방문하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까지 모두 참배했지만 그것이 곧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건국 이후의 굴곡과 역대 대통령들의 공과를 지적하면서 ‘역사의 화해’를 강조하지 않은 바 아니다. “우리가 안아야 할 역사이며,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과제”라는 언급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주 빠른 성장의 그늘 속에 많은 적폐들이 있다”는 후속 발언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가 검찰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과거 정권의 적폐 청산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 같은 맥락이다.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돼야 한다거나, 이 시업들이 지금 와서 추진에 애로를 겪고 있는 것이 새 정부의 영향력 행사에서 비롯됐다는 불평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박 전 대통령을 ‘역사의 영역’으로 멀리 놓아 주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그가 주도했던 개발경제의 패러다임도 이제는 옛 시대의 유물로 전락한 상황이다. 그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권좌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객관화될 전망이다.

그렇다 해도 이번 기념우표 발행계획이 취소된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기준과 원칙의 문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의 평가를 떠나 나라를 이끌었던 시대의 지도자를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는 마지막 예우로서도 부족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