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銀, 성동조선 RG발급 결정…‘구조조정 퇴색’ 논란

by노희준 기자
2017.07.05 06:00:00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수출입은행 등 성동조선 채권단이 탱커선(유조선)7척에 대한 선수급환급보증(RG)발급을 사실상 결정했다. 하지만 기존 RG발급 기준에 못 미치는 저가 수주를 구속력이 보장되지 않는 노조의 ‘경영협력’ 확약서를 받는 조건에서 허용했다는 점에서 각에선 ‘구조조정 원칙’ 의 후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RG는 조선사가 제때 선박을 짓지 못 할 경우 선주가 계약금으로 미리 준 선수금을 금융기관이 대신 반환해주겠다는 보증서로 RG가 없으면 수주계약은 파기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단은 성동조선이 원가에 못 미치는 저가로 수주한 7척(옵션 2척 포함)에 RG발급을 사실살 결정했다. 수은 고위 관계자는 “회계법인을 통해 원가 분석을 하고 있다”면서도 “(RG발급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채권단은 성동조선을 위해 기존 수주 가이드라인을 완화했다. 수은은 2014년 2월부터 ‘영업이익이 나는’ 선박으로 RG발급을 제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산의 노후 가치를 회계상으로 차감하는 감가상각비를 원가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원가의 2~3%미달하는 계약건까지 RG를 허용키로 했다. 채권단은 반대급부로 최근 노조로부터 ‘경영정상화에 적극 동참한다’ 취지의 확약서를 받았다.

문제는 구조조정 원칙이 이번에도 흔들렸다는 점이다.

수은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 국제 선가를 감안하면 (원가 이상의 계약건으로는) 일감 확보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성동조선은 수주 잔량이 10척이다. 이번 7척의 수주 계약을 따내지 못 하면 오는 10월에 일감이 바닥난다. 배 짓는 야드가 텅텅 비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추가 수주건은 반년치 일감에 불과한 상태다.



특히 채권단이 RG발급 기준 완화의 조건으로 받은 노조 확약서는 원론적 차원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그간 ‘추가 고통분담 불가’ 등 조건없는 RG발급을 요구하다 뒤늦게 확약서를 제출했다. 수은 고위 관계자는 “확약서에는 (경영정상화에 적극 동참한다는)원칙만 들어 있고 구체적인 경비절감 방안 등은 노사가 합의를 해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반기 기준 성동조선 1450명의 인력에서 발생하는 인건비를 언제까지 얼마나 줄이겠다는 등의 구체적 방안은 없는 셈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위원장 인선 지연 속에 이해관계자의 엄격한 고통분담하에 추진해야 할 구조조정이 ‘연명식 지원’에 머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조선업의 위기는 저가 수주로부터 왔고 한쪽의 저가수주는 과당경쟁을 불러 전체 조선업에 악영향을 준다”며 “노조 확약서 역시 구체적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인력의 자연감소분 수준에 머무는 고통분담으로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선업황 역시 조금씩 나아진다는 기대가 나오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실제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이 집계해 발표한 올해 5월까지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650만 CGT(선박의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한 무게 단위)로 지난해 같은기간 발주량 590만 CGT보다 11% 증가했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러나 “이는 회복이라고 보기 보다는 기저효과로 판단하는 편이 더 타당하다”며 “비교 대상으로 적정한 2011~2015년 1~5월 발주량에 비교하면 63% 감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주회복 기미는 대형조선소에만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BNK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소형 조선사의 수주절벽은 지속되고 있다”며 “국내 8대 중소형 조선사는 올해 1분기(1~3월) 중 단 3척 수주에 그쳤고 전체 수주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7%까지 하락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중소조선사에 대해선 각자도생하라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중소조선 구조조정은 채권단 주도로 이뤄지고 추가 자금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면 그때 구조조정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게 원칙”이라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관여하지 않고 있고 상황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