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금융 포퓰리즘의 망령

by송길호 기자
2017.03.06 06: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규제의 목적은 선(善)하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생적 시장질서에 배치되는 규제는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경제적 비효율을 양산하는 법. 그 부작용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와 시장의 적폐를 심화시킨다. 복합적인 경제현상을 획일적 규제로 해결하려는 모습. 바로 규제의 환상이다.

정치권의 금융 포퓰리즘 법안이 다시 봇물을 이룬다. 선거판 단골메뉴인 신용카드수수료 인하, 법정 최고금리 인하 방안은 이번에도 예외 없다. 소득 신용과 무관한 대출금리 차별 금지, 대출 원리금을 성실히 상환하면 이자 일부를 돌려주는 성실이자 환급제…. 금융기관 경영에 직접 개입하고 시장규율에 역행하는 무차별 규제의 전형이다.

외환위기의 파고가 지나간 2002년 8월. 16대 대선을 앞두고 이자율상한제가 전격 부활됐다. 외환위기 당시 자금시장 왜곡을 이유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폐지 권고를 받은 지 4년만이다. 대부업법 제정을 통해 최고 이자율을 70% 범위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식. 저소득·저신용 서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선의의 규제’였다. 부작용은 적지 않았다. 이자율 상한으로 대출관리가 엄격해지니 신용도 높은 대출자에게 자금이 우선 배정됐다. 당연히 저신용자들은 대부업 문턱마저 넘지 못한 채 제도권 밖 법률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채시장으로 내몰렸다.

변칙과 편법도 난무했다. 일부 대부업체는 선(先)이자나 수수료 명목으로 대출금 일부를 사전에 공제하며 이자율 상한의 규정을 교묘히 피해갔다. 영업에 타격을 받은 상당수 대부업체들은 아예 불법 고금리 사채업체로 변신했다. 대부업법 제정 후 2년여동안 지자체 등록 1만9000여개사중 절반에 달하는 9000여개사가 스스로 문을 닫고 지하로 들어갔다. 모든 부담은 고금리 대출이자에 허덕이던 저소득· 저신용 서민들의 몫. 정부가 보호하겠다던 바로 그들이다. 돕는답시고 울리는 단선적 정책의 폐해다.



이자율 상한은 전형적인 가격통제다. 이는 시장 작동 원리를 훼손하며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소상공인을 위한 카드수수료 인하, 고금리 대출이자 경감을 위한 금리 차별 금지…. 모두 규제의 직접적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이면에 자리잡은 피해와 비용엔 애써 눈을 감는다. 근시안적 포퓰리즘의 단면이다.

선거철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양산하는 규제법안은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공정으로 포장된 결과적 평등을 지향한다. 경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높은 지금과 같은 복잡한 현실에선 더욱 심하다. 경제민주화의 이념적 광풍, 여기에 선거공학적으로도 성장보다는 분배, 효율보다는 형평으로 이념적 푯대를 잡는 게 유리할 터이다.

이들은 규제의 강제력을 빌려 일도양단(一刀兩斷) 단번에 문제점을 해결하려 나선다. 규제를 통해 구체적인 목표,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할 다른 가치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차별을 제한하려는 규제가 오히려 차별을 심화하고 평등을 위한 규제가 결과적으로 평등을 무력화하는 건 이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금융 포퓰리즘의 망령이 다시 떠돌고 있다. 직접적인 가격통제 방안과 같은 금융 포퓰리즘은 신용질서를 위협하고 경제의 혈맥인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법. 명령과 지시,경직된 규제로 산적한 경제적 폐해가 해소될리 없다. 규제의 비용편익에 대한 정교한 분석 없이 무분별하게 휘두르는 근시안적인 규제의 칼날. 표심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또다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