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① 김학민 국립오페라단장 "취임 1년이 10년 같더라"

by김미경 기자
2016.08.08 06:16:00

지난해 7월 취임 후 1년 첫 단독인터뷰
2019년까지 라인업 이미 구상, 여건 바쳐줘야
'실패 두려워 말라 평가는 나중에'가 모토
행정가 대 예술감독 균형 맞춰가는 중
"지켜봐 달라…첫 단추 끼는 작업 잘 마무리"

김학민 국립오페라단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공연장 객석에 섰다. 그는 “대중에 친숙하면서도 심오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게 국립오페라단의 갈 길”이라며 “지금 해야 할 일이 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당장의 결과물보다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 우선이다. 성과는 나중에 온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올 하반기 ‘로미오와 줄리엣’, ‘로엔그린’, ‘토스카’ 3개 작품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역시 대중과 심오함을 공략한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지난해 7월 당시 국립오페라단장 자리는 ‘독이 든 성배’와 다를 바 없었다. 바람 잘 날 없던 인사 탓에서다. 2014년 김의준 전 단장이 사퇴한 이후 단장자리를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10개월간 공백기를 겪다가 어렵게 수장이 된 한예진 전 단장은 자질논란 끝에 결국 취임 53일 만에 물러나고, 다시 넉달이 지난 뒤였다.

김학민(54)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역시 자격 시비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직무실에서 만난 김 단장은 이데일리와의 취임 1주년 단독인터뷰에서 “1년이 10년 같더라”며 웃었다.

김 단장은 “수장을 맡은 뒤 10년이 지난 듯하다. 지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온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하다 보니 몸이 먼저 알더라”면서 “예술단체 수장 역할이라는 게 행정가의 마인드를 갖추면서도 예술가 입장에서 이끌어가야 하는데 이제야 두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다”고 자체 평가했다.

김학민 단장(사진=방인권기자).
“당장 빛나지 않더라도 효과가 오래가는 일을 먼저 택했다.” 김 단장은 취임 이후 기초작업을 다지는 데 몰두했다. 오페라단 자체가 소유한 극장이나 오케스트라가 없고 예산도 부족하기 때문에 오페라단 고유의 대표 레퍼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우선이란 생각에서였다.

첫 작업은 ‘시즌제’ 도입이었다. 그동안 1∼12월로 정해놓은 체제를 외국 유수의 오페라단처럼 9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바꿔 진행했다. 첫 2015~2016 시즌제 작품인 ‘진주조개잡이’(2015년 10월 15~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국내 초연 성공에 힘입어 뉴프로덕션으로 선보인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2015년 11월 18·20·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도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2014년 제작한 ‘라트라비아타’는 작품성이 높고 대중성이 뚜렷한 만큼 국립오페라단 레퍼토리로 정착하기 위해 2015년 12월 예술의전당, 2016년 4월 서울 국립극장을 비롯해 천안 예술의전당, 안동 문화예술의전당 등 여러 지역에서 꾸준히 공연하도록 했다. 국립오페라단 고유의 18번인 레퍼토리 정착과 신작의 밸런스도 7:3 정도로 맞추고 내실을 다진다는 계획이다

투명성과 공정성에 입각한 성악가·무용수 오디션 정책 정례화 작업도 그의 작품이다. 오페라 수준을 한차원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출연자들을 미리 선발·확보함으로써 작품 제작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꾀한다는 게 김 단장의 생각이다. 여기에 국내외 성악가 등 오페라 관련 인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도 진행 중이다. 출연료 산정 기준 확립을 위한 매뉴얼을 만드는가 하면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감도 10년 단위로 정리해 2000년대까지 어느 정도 마무리한 상태라고 했다.

김 단장은 “작품 이외에 민간과 지역의 수많은 오페라 단체와 상생하는 방법, 어떻게하면 도울 수 있을까 관련된 일을 찾고 있다”며 “직원들의 행복지수를 늘려주는 것도 수장의 몫이다. 예술감독과 행정가 사이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사진=방인권 기자).
김 단장은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로 통한다. 뮤지컬·오페라 등 관련 서적으로 대중에 먼저 이름을 알렸다. 클래식계 베스트셀러인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2001) 등을 썼다. 그러나 일각에선 ‘오페라계 외부 인물’ ‘연출 경험 부족’ 등을 이유로 김 단장을 반대했다. 고대 영어영문과를 나온 뒤 뒤늦게 클래식계에 입문, 소위 정석의 길을 걸어오지 않은 그에 대한 일부 업계 인식은 박한 편이였다. 연출력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과욕이었을까. 지난 5월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국내 초연작인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4월 28~5월 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제작과정에 비전문가인 자신의 아내를 드라마투르그로 참여시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루살카’는 김 단장이 기획·제작에 참여한 신작이자 연출을 맡은 야심작이었다. 체코오페라인 만큼 체코어 전공 문학전문가를 찾아야 했는데 적임자가 드물어 불가피하게 아동영문학 박사과정 중인 아내를 무보수로 기용한 게 논란을 불렀다. ‘루살카’는 김 단장 연출 아래 오로지 국내 제작진의 힘으로 만들어져 향후 재연을 통해 가다듬어진다면 작품성과 흥행성을 노릴만한 작품이란 평을 받긴 했지만 제작과정에서의 문제, 작품의 이분법적 해석 등으로 김 단장의 연출력에 대한 의문을 확실히 해소시키진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단장은 “마(魔)가 끼었나 싶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국내 오페라계는 당장의 것을 처리해야 하는 구조다. 루살카 사건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취임 초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벽에 부딪쳤다. 극장 스케줄이 되면 오케스트라 일정이 맞지 않거나 둘 다 해결하면 해외관계자와의 소통이 풀리지 않는 식”이었다고 그때를 돌아봤다.

“세계적 스타인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나 독일 출신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을 내년까지 데려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어찌 보면 시스템에 호소해야 하는데 운에 호소해 왔다. 여유있게 플랜을 짜고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오페라단을 만드는 게 지금의 단장이 할 일이다.”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작업이 많다. 임기 3년 내 마무리하기에는 쉽지 않을 거라고들 한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겠다는 생각이다.” 김 단장은 국내 초연한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5월 18~21일)를 실례로 들었다. ‘오를란도 핀토 파쵸’는 비발디의 초기 오페라작품으로 외국 스태프와 한국 스태프가 함께해 시너지를 내 평단·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35)는 밀라노 라스칼라극장에서 조연출로 탄탄한 경력을 쌓은 연출가이자 대본가로 이번 무대로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다. 신인을 발굴했다는 점, 진정한 국제화 형태이자 우리 씨앗의 토양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우연이 아닌 국립오페라단 전원이 부단히 노력한 결과다.”

김 단장은 2019년까지 라인업을 짜 놓은 상태. 그는 “대관령음악제·영화·지방 등을 다니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고 계획을 짜 놓은 상황이지만 10개 중 2개만이라도 실행하자는 마음”이라면서 “실패를 두려워 말라가 모토다. 평가는 나중에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차근차근 계획대로 해나겠다. 임기 후 10년, 20년 뒤 오페라단이 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첫 단추를 끼우는 역할만 제대로 하자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립오페라단은 성장기다. 10대는 아니고 20대 초반 군대 갔다온 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딱 그 즈음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기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책임감이 크다.”

10년 후에 그는 어떤 모습일까. 김 단장은 “아마도 연구실에 처박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아마도 책을 쓰고 있을 거 같다. 오페라에 대한 얘기다.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많다.”

DVD를 제작해 아마존닷컴에서 판매하는 게 국립오페라단의 숙원사업이다. 국내 기획·제작 작품이 DVD로 제작해 판매된 적은 아직 없다. 김 단장은 “아무 작품이나 만드는 게 아니다. 올 5월 국내 초연한 ‘오를란도 핀토 파쵸’는 해외에서 제대로 공연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외국과 우리 스태프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성공작”이라며 “이탈리아 오페라를 발굴해 전 세계 되파는 작업이 될 거다. 아직 구상 단계다. 예산, 스케줄 등 구체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사진=방인권기자).


1962년 서울 출생. 어머니가 피아니스트로 다섯 살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고 자랐다. 장남이라 음대는 접고 고려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연극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가 영화 ‘사랑과 슬픔에 볼레오’를 본 뒤 오페라를 해야 겠다고 마음을 굳힌 후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현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장과의 인연으로 서울대에서 음악이론 석사·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1994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 오페라과에서 연출과 성악·지휘법·무대디자인 등을 공부했다. 2000년 국내 유일의 오페라 연출 실기박사를 받은 뒤 오페라·뮤지컬을 포괄하는 연출가로 국내외서 지속적인 활동을 했다. 대학원 재학시절 예음 서양음악 부문 평론상을 받으면서 왕성한 평론활동을 하기도 했다. 저서로 베스트셀러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외에 ‘오페라의 이해’ ‘후기낭만주의오페라’ ‘뮤지컬의 이해’ ‘뮤지컬양식론’ 등이 있다. 주요 연출작으로 오페라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파우스트’ ‘세비야의 이발사’ ‘오르페오’ ‘루살카’ 등이 있으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작업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