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넴초프 추모 물결`…러시아 反정부시위 5만명 운집
by이정훈 기자
2015.03.02 06:35:08
모스크바서 대규모 추모시위..야당 정치인들 참석
"푸틴없는 러시아를!"..용의자 아직 못찾아
| 모스크바에서 넴초프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초상화를 들고 거리로 나온 시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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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최대 5만명이 운집해 의문의 총격으로 피살된 야당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55)를 추모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사실상의 반(反)정부 시위로, 시위대의 규모는 30년만에 최대였다.
전 러시아 총리였던 미하일 카시아노프가 주도한 추모 시위는 1일(현지시간) 수만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모스크바 경찰은 2만1000명 정도가 모인 것으로 추산했지만, 비영리 국제 모니터링 단체인 골로스에 따르면 참석자는 5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꽃과 초상화 등을 들고 전날 자정 직전 넴초프가 사망한 크렘린궁 인근 성 바실리 대성당 인근 다리까지 거리행진을 벌였고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카시아노프 전 총리도 “(블라디미르) 푸틴없는 러시아”를 외치며 이번 사건을 정적 암살로 보고 러시아 정부와 푸틴 대통령을 겨냥했다.
경찰은 헬기와 모스크바 강에 보트들을 띄워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푸틴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넴초프 전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크렘린궁 인근에서 괴한의 총에 피살됐다. 넴초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을 밝혀줄 결정적 증거를 공개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그의 피살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푸틴 집권 전인 1990년대 말 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온 야권 지도자다. 그는 이날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을 비판하는 내용의 라디오 인터뷰를 진행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아내가 있는 넴초프는 밤늦게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의 여자 친구와 길을 걷던 도중 크렘린궁에서 약 2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다리 위에서 괴한이 쏜 총 4발을 맞고 즉사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날 “넴초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접 개입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확보했었다”며 “이 증거의 공개를 두려워한 누군가가 살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카시아노프 전 총리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1세기 러시아에서, 그것도 크렘린궁 바로 곁에서 이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는데 모든 러시아인들이 충격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며 “오늘 시위는 우리와 같은 행동주의자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걱정하는 모두의 행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전 부총리 넴초프의 친구이며 야당 동료 지도자인 일야 야신은 넴초프의 죽음으로 시민들이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AP통신에 “기본적으로 테러 행위다. 넴초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겁주기 위한 정치적 살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넴초프가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넴초프 살해와 관련해 아직 한 명도 체포되지 않았다. 내무부는 넴초프 살해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300만루블(약 54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넴초프의 살해 동기를 조사하고 있는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우선 러시아 정국을 불안정하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방수사위원회는 “넴초프는 정치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어떤 방법도 불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물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