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에 벌금·집유’…대형 산재사고 악순환

by유재희 기자
2014.03.19 07:46:47

사법당국, 중대재해에도 불기소·집행유예 남발
12명 사망한 대형 사고도 하청사장 집유 2년 그쳐
노동계·학계 "산재사망 처벌 강화 특별법 제정해야"

[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2012년 12월 한라건설 작업선 울산항 침몰사고(사망 12명·부상 8명), 2013년 1월 대림산업 여수공장 폭발사고(사망 6명·부상 11명), 5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아르곤 가스 누출사고(사망 5명), 7월 노량진 수몰사고(사망 7명)….

대형 산업재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사업주들의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人災)’들이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이 산재 예방을 위한 투자와 노력이 이뤄지지 않게 하는 원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 국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1864명이 산재로 숨지고 9만여명이 재해를 입었다. 하루 평균 5명, 5시간마다 1명 사망한 꼴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에는 사업주가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외국에 비해 처벌 수위가 약하지만, 현실에선 이마저도 무용지물이다. 일례로 2011년 아르바이트 대학생 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탄현 이마트 냉동차고 질식 사고 당시 부과된 벌금은 100만원에 그쳤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0.1~2012.7) 산안법 위반으로 송치된 사건 8737건 중 중대 재해는 2290건이다. 이 중 벌금형이 57.2%로 가장 많았고, 이어 혐의 없음(13.8%), 기소유예(11.1%) 순이었다. 2.7%만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실형은 거의 없었다.



대기업에 대한 처벌은 더욱 관대하다. 고용부가 내놓은 ‘2012년∼2013년 중대 재해 사건의 대기업 처분 결과’를 보면 2년간 사망자를 낸 대기업 산재사고는 총 9건(사망48명·부상 59명). 그러나 법원이 사고 책임자에게 실형을 선고한 사건은 대림산업 여수공장 폭발사고(2심·원청 공장장 징역 8개월)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아르곤 가스 누출사고(1심·원청 부사장 징역 2년), 노량진 수몰사고(1심·하청 소장 징역 2년) 뿐이다.

자료: 고용노동부 (2월25일 현재 기준)
노동계와 학계에선 ‘산재사망 처벌 강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업 살인처벌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안은 중대재해 발생 때 사업주를 가중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영업정지 등과 같은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게 골자다.

영국은 2008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며 캐나다와 호주도 ‘산업 살인법’을 도입, 산재 사망사고 때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미국은 최근 산안법 위반으로 인한 노동자 사망 시 징역 10년형, 반복 시 20년형을 부과하는 내용의 ‘노동자 보호법안’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 국회엔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기업 살인처벌법안’이 계류 중이다. △산업재해 사망 시 7년 이상의 징역 △범죄 행위자 및 해당 법인, 개인에게도 과징금 부과 △피해자에게 손해의 3배 이상 배상 △해당 기업의 허가 취소 및 처벌사실 공표 등이 주요 내용이다.

김찬오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 사고 발생 사업장을 가보면 예방활동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면 기업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인식 확산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계에서는 처벌 강화보다는 산재 예방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임우택 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팀장은 “강력한 처벌 규제는 기업 경영활동 전반을 압박할 수 있고, 위헌 시비 등 부작용도 일으킬 수 있다”며 “기업 스스로 예방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