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현대건설 채권단, 향후 시나리오는?

by좌동욱 기자
2010.11.28 10:18:23

"증빙서류 확인 먼저" vs "MOU 체결 우선"
대출계약 확인 불가피할 듯..소송 가능성
입찰 규정상 MOU 체결시한인 29일 `고비`

[이데일리 좌동욱 기자] 현대건설(000720) 채권단이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사실상 M&A 마무리 단계로 예상됐던 현대건설 매각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현대그룹이 프랑스 투자은행(IB) 나티시스로부터 조달한 1조2000억원의 실체에 대한 여러 의혹들에 대해 정치권까지 개입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출계약서(증빙자료) 확인 없이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입찰 규정상 대출금의 증빙서류를 제출할 이유가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양측의 입장차와 향후 금융당국, 정치권 개입 변수를 고려하면 채권단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도 많지 않아 보인다. 


28일 현대건설 채권단과 현대그룹 등에 따르면 현대건설 매각(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시점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채권단은 언론과 정치권에서 제기된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의 대출금 1조2000억원 실체를 확인한 후 MOU를 체결하자는 입장인 반면 현대그룹측은 MOU 체결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현대건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에게 요청한 28일까지 프랑스 은행의 대출금 1조2000억원의 증빙 자료(대출계약서) 제출 여부를 기다려보겠다"며 "그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채권단간 협의 일정도 잡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1조2000억원의 대출금 실체가 MOU 체결 등 M&A 후속절차의 진행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MOU를 체결한 후 채권단의 자료제출 요구에 협조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사전에 약속한 입찰 규정상 채권단이 대출계약서와 같은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대그룹은 입찰 규정에 따라 29일까지는 MOU를 체결해야 한다고 채권단을 압박하고 있다. 채권단도 29일을 넘길 경우 현대그룹이 민형사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25일 채권단이 현대그룹측에 증빙자료 제출을 요청했을 당시에도 28일까지라는 날짜만 명시했지, 정확한 시각은 정하지 않았다. 현대그룹이 이날 채권단 요청에 응하지 않더라도 채권단 대응책은 29일 이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앞으로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많지 않다.

우선 현대그룹과 채권단이 대출 계약서 확인을 전제로 MOU를 체결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MOU를 선(先) 체결해야 한다는 현대그룹측 요구와 대출계 약서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채권단 입장을 타협한 논리다. 

이에 대해 채권은행별 온도차가 있긴 하지만 대출계약서 확인을 전제로 한 MOU를 체결하자는 논리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덜하다. 오히려 채권단 내부에서는 경제 논리로 진행돼야 할 M&A 절차가 `정치권 변수`에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는 시각이 더 크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의 강경한 입장 이면에는 결국 채권단이 현대건설을 현대그룹에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있다"며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초 1조2000억원의 자금 실체에 대해 강한 의혹을 품었던 금융당국이 "채권단 내부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선 입장을 정리한 것도 채권 은행들의 활동 반경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는 요인이다.


두번째로는 채권단이 `MOU 체결 전 대출계약서 확인`을 고집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의 경우 수는 두가지다. 우선 현대그룹이 이날까지 대출계약서를 제출하는 경우다. 채권단이 예상하는 `베스트` 시나리오다.

채권단 관계자도 "애초에 증빙자료 제출 자체를 완강하게 거부했던 현대그룹이 지난 23일 일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냐"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현대측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채권단과 금융당국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현대그룹은 이미 현대건설 인수전 상대자인 현대차그룹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바 있다. 또 현대그룹과 재무구조개선 이행약정(MOU)을 체결하려했던 채권단을 상대로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 현대건설 매각전 MOU를 체결하려했던 채권단 움직임을 봉쇄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 판단이 내려질 때 까지 현대건설 매각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채권단도 거액의 현대건설 매각차익을 현실화할 기회를 상당기간 뒤로 미뤄야 한다.

채권단이 `현대그룹이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는 `강경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도 지난 24일 국회에서 "장부확인을 넘어 (채권단이) 자금원천까지 조사할 수 있느냐에 대해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혀, 가능성은 열어뒀다.

하지만 이런 강경론은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를 세워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다는 채권단 명분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제기된 의혹도 풀지 못할 정도로 우선협상대상자 평가 기준이 허술했다는 점을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어떠한 경우든 M&A 후속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1조2000억원 대출계약서를 확인하는 절차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1조2000억원의 대출금에 `옵션이나 스왑`과 같은 조건 등이 붙었을 경우, 우선협상대상자 평가 당시 이 자금을 `타인자금`이 아닌 `자기자금`으로 인정한 것이 무효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자기자금이냐 타인자금이냐 여부와 관계없이 `허위사실 기재나 중요사안 누락` 등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

또 김용태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에서 제기한 외환거래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대출계약서 검증은 필요하다. 김 의원은 당시 `해외 현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현지에서 차입한 자금을 국내로 반입할 수 없다`는 외국환 거래법 규정 때문에 이 자금을 국내로 반입하게 되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1조2000억원의 대출금은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 명의로 나티시스 은행에 예치돼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현대그룹과 나티시스 은행간 대출 성격과 조건에 대해 몇가지 루머들이 떠돌고 있다.  채권은행 내부 고위 관계자는 "시장에서 흘러다니는 대출 조건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채권단이 어떤 잣대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유지될 수도 박탈될 수도 있다"며 "채권단이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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