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4.01.28 07:59:55
때아닌 휴가여행 북새통
공정위 "6개월 이상 늦춰라"…항공사들 미적미적
[조선일보 제공] 대기업 계열 종합상사에 다니는 김모(35) 과장은 임신 7개월 중인 아내를 다음달 미국 친지 댁에 다녀오도록 할 계획이다.
당초 아내가 출산한 뒤 여름휴가 때 함께 가려고 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3월부터 마일리지 혜택이 축소된다는 소식을 듣고 우선 그전에 아내부터 보내려고 신청했다”며 “부부가 모은 7만 마일로 비즈니스석 표를 끊었다”고 말했다.
중소 무역회사 D사 김모(33) 대리도 지난주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나기 위해 그 동안 쌓은 마일리지를 쏟아부었다. 대한항공 왕복 항공권(2만7000마일)과 제주 KAL호텔 1박 숙박권(2만마일)을 마일리지로 산 것.
김씨는 “1년에 한두 번 나가는 중동·유럽 출장 때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하려고 아껴 뒀는데 마일리지제도가 바뀐다는 말을 듣고 제주도행을 결심했다”며 “지난 3년간 유럽 여행으로 모은 6만마일 대부분을 이번 제주도 여행에 다 써버렸다”며 아쉬워 했다.
오는 3월로 다가온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제도 변경을 앞두고 혜택 축소 이전에 서둘러 마일리지를 다 사용하려는 고객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특히 주말을 이용, 가까운 제주도로 ‘마일리지 가족여행’을 다녀오려는 직장인 회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2월 주말에 마일리지로 제주행 항공권을 구입하려면 오후 늦은 노선만 가능한 실정이며, 평일에도 마일리지 좌석은 아침 일찍이나 오후 늦게 떠나는 항공편만 남아 있다.
현재 양 항공사 마일리지 회원은 대한항공 1000만명, 아시아나항공 900만명선. 지난해 마일리지 이용 고객은 전년 대비 40% 증가했고, 올해에도 10% 이상 오름세다.
통상 항공사들이 전체 좌석의 10% 안팎 수준에서 마일리지 무료 항공권을 배정하는 점을 감안하면 2월 이전 마일리지 좌석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다.
이러다보니 여행 계획을 급작스레 세우는 경우도 많다. 국립 대학에 근무하는 박모(42) 부장은 지난주 겨울휴가 신청서를 냈다. 그는 지난해 12월 중순 마일리지를 써 제주도에 가려다 “제주도 갔다오는 데 마일리지를 써버리면 아까우니 미국이나 뉴질랜드를 다녀 오는 게 이득”이라는 항공사 직원의 만류로 무료 항공권 신청을 취소한 일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이제 와 제주도에 가려니 원하는 날짜엔 자리가 없고, 3월 이전 미국·뉴질랜드를 갈 일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마일리지를 어떻게든 쓰기 위해 여행 계획을 세운 박 부장은 “이번 기회에 항공사 제휴 신용카드도 다른 걸로 바꾸겠다”며 “언제는 마일리지로 고객들을 모으더니 이제 와 혜택을 줄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다니 상(商)도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공정위는 올 3월로 예정된 마일리지제도 변경시기를 고객들의 사정을 감안해 유예하라고 항공사들에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공정위는 최근 양 항공사 사장을 불러 “시행시기를 6개월에서 1년 정도 늦추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항공사들은 “그 동안 충분히 알렸다”며 반발하고 있다.
항공사들도 나름대로 누적 마일리지를 처분하기 위해 갖가지 선전과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은 ‘마일로 호텔로’라는 제목을 통해 평일 1만2000마일, 주말 2만마일을 쓰면 제주·서귀포 KAL호텔 1박 무료 숙박권을 얻을 수 있다는 광고를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성수기에는 2만5000마일이라 비수기인 요즘 쓰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도 미주·사이판 노선에서 수하물이 초과될 경우 13만5000원을 부과하던 것을 7000마일로 대신 지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또 “마일리지제도 변경 이후에도 국내선이나 동남아·중국·일본 노선 혜택은 전과 같거나 오히려 확대된다”며 “3월 이후 모든 마일리지제도가 줄어드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