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쏟아지는 환상의 축제…부산을 바꾼 문화·예술의 세계 [여행]

by김명상 기자
2024.07.26 06:00:00

파스텔톤 색상 가득 얽힌 감천문화마을
줄 서서 어린왕자와 사진 찍는 명소로
선박 수리하던 대평동의 깡깡이 아지매
벽화·유람선·다방 등 지붕 없는 미술관
신규 문화적 핫플레이스 ‘아르떼뮤지엄’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새로운 경험 선사

감천문화마을의 하늘마루전망대에서 본 마을 전경
[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 고운 머릿결을 흩날리며 나를 반겼던’

가수 최백호가 부른 이 노래 가사처럼, 부산에는 각자가 품은 그리운 시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낭만적인 공간이 많다. 높다란 빌딩으로 가득한 부산의 이면에는 과거의 애환과 향수가 짙게 밴 개성 넘치는 마을과 새로 등장한 현대적인 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방문객을 문화와 예술의 바다로 밀어 넣는 이 장소들은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부산을 처음 찾는 이들의 필수코스이자 전 세계 인종을 만날 수 있는 부산의 관광명소. 감천문화마을의 첫인상은 특이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하늘마루전망대에 오르자 입을 절로 벌리게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 다채로운 색상의 지붕이 모자이크처럼 얽히며 몽환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촌으로 시작돼 낙후 지역으로 쇠락하던 감천문화마을은 2009년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곳곳에 70여 개의 조형예술 작품이 설치됐고 계단식 주거 형태의 집에 파스텔 톤의 색을 입히면서 아름다운 마을로 탈바꿈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는 국내외에서 308만 명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감천문화마을의 어린왕자 조형물
하나의 거대 예술 작품에 들어온 것 같은 감천문화마을의 또 다른 명물은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 조형물이다. 알록달록한 마을 풍경에 어린왕자의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말 그대로 동화 속 장면을 자아낸다. 평일에도 20여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가족여행을 왔다는 프랑스 관광객은 “마을에 어린왕자 벽화와 프랑스어로 쓴 소설 문구가 있어서 반가웠다.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재미난 포즈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보다 보면 기다리는 지루함도 덜하다. ‘만약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는 명대사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표현하거나, 어린왕자에 기대어 하트 손동작을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굴에 절로 웃음꽃이 번졌다.

깡깡이 예술마을은 국제해양도시 부산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한 곳이다. 영도대교 인근에 자리한 이곳은 예로부터 조선소 마을로 유명했다. 1887년에는 국내 최초로 엔진을 장착한 목선을 만든 다나카조선소가 세워졌고 1970~80년대에는 선박 수리의 메카로 불리기도 했다.



항해를 한 철선은 녹이 슬기 마련이었고 정기적으로 페인트칠을 해야 했다. 작업은 ‘깡깡이 아지매(아줌마)’들의 몫이었다. 배 표면의 녹을 제거하거나 달라붙은 조개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 벗겨낼 때 ‘깡깡’ 소리가 나고, 주로 여성들이 일을 했기에 붙은 별명이다. 항상 쇠 두드리는 소리를 듣다 보니 귀가 상하고 손망치를 쓰다 손목을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지매들은 일을 하러 나서야 했다.

예인선을 수리해 전시장으로 바꾼 선박체험관
지금도 깡깡이 예술마을에는 십여 곳의 수리조선소와 200여 개에 달하는 공업사와 선박 부품업체가 있어서 수리조선업이 번창하던 시절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깡깡이 예술마을 조성사업 이후 마을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곳 여행의 시작점은 ‘깡깡이 안내센터’로 세 가지 체험이 가능하다. 예인선을 수리해 전시장으로 바꾼 선박체험관을 둘러볼 수 있고, 주말에는 대평동 수리조선소 일대를 선상에서 관람할 수 있는 깡깡이 유람선이 출발한다. 마을 해설사와 동행하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마을투어도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수리조선소 일대를 도는 깡깡이 유람선
마을을 돌다 보면 건물마다 그려진 개성 넘치는 그림과 벽화들을 만날 수 있다. 조선소의 역사를 반영해 다른 벽화마을보다 예술적 분위기가 더 짙은 편이다. 깡깡이 아지매들의 거친 삶의 흔적은 ‘깡깡이 생활문화센터’에서 볼 수 있다. 규모는 작지만 당시 이들이 수리 작업을 하던 기구와 각종 선박 관련 용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 명소의 출현에 부산이 말 그대로 ‘디비졌다’(뒤집혔다). 지난 19일 부산 영도에 세계 8번째로 문을 연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 부산’은 개관하자마자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채워줄 오아시스 같은 공간으로 발돋움했다.

18일의 사전 예매기간동안 입장권이 9만 장이나 판매될 정도로 기대감이 높았다. 부산관에서는 ‘순환’을 주제로 총 19개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새 작품이 16개에 달하는 것도 인기의 한 비결이다.

‘아르떼뮤지엄 부산’의 작품 중 하나인 ‘서클’
디지털 아트의 세계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겸한 ‘서클’이다. 허공에서 빛나는 원형의 모래 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드는 작품으로 어딘가 사람의 눈동자를 연상케 한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빛의 향연’이 시작된다. 반 고흐가 그린 작품과 붉은 디지털 장미가 지천으로 깔린 공간 ‘플라워’에서는 다른 세상 속 정원에 온 듯한 착각을 즐길 수 있다.

‘아르떼뮤지엄 부산’의 작품 중 하나인 ‘스태리 비치’
많은 감탄사가 쏟아진 곳은 ‘토네이도’였다. 어둡고 조용한 공간 한가운데 솟은 수증기 기둥이 회전하며 상승하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 밖에도 캄캄한 공간에서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밤바다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스태리 비치’, 태풍이 부는 바다 근처에 놓인 듯한 압도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인 ‘웨이브’도 발길을 붙잡는다.

‘아르떼뮤지엄 부산’의 가든존에서 볼 수 있는 ‘스태리 부산’
부산관의 압권은 가든존에서 선보이는 초대형 미디어아트 ‘스태리 부산’이다. 부산이 품은 역사와 갖가지 관광자원을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감천문화마을, 해운대블루라인파크, 부산 신항, 마린시티, 광안대교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요트를 타고 광안대교 밑을 지나며 불꽃놀이를 보는 듯한 연출은 디지털 아트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여행의 방법을 제시하는 듯하다. 성인 입장료는 2만 원부터, 입장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아르떼뮤지엄 부산’의 가든존에서 볼 수 있는 반 고흐의 디지털 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