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의 樂카페]'그룹' BTS를 원한다
by김현식 기자
2023.06.19 06:30:00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올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만인이 인정하는 비틀스가 1963년 ‘플리즈 플리즈 미’와 ‘쉬 러브즈 유’와 같은 노래로 영국 전체를 뒤집어놓은, 이른바 ‘비틀마니아’를 야기한 지 60년이 흐른 해다. 너무 옛날 얘기라 젊은 세대와 멀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음악에 포박당한 사람은 많다. 밴드 리빙 컬러의 버논 리드는 “비틀스는 아직도 내 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비틀스는 ‘매력덩어리 넷’으로 통하듯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멤버들 개개인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 그 합인 비틀스란 이름이 막강하다. 확실히 존 레논보다 비틀스가 더 유명하다. 존 레넌이 1980년 피격사망하고 조지 해리슨이 후두암으로 2001년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엔 물건너갔지만 비틀스 해산 후 1970~1980년대 내내 음악계 최고의 화제는 ‘비틀스 재결합설’이었다.
멤버 중 가장 인기 높았던 폴 매카트니가 1970년 비틀스 해산 후 잠시 솔로활동에 이어 이듬해 곧바로 밴드 윙스를 결성한 것도 사람들이 비틀스 밴드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시사주간지 타임도 윙스의 전성기 때 ‘비틀스 컴백’이란 수식을 동원했다. 폴 매카트니는 비틀스를 10년 했듯 윙스도 10년을 했다. ‘한번 밴드는 영원한 밴드’란 말처럼 음악가에게 그룹 혹은 밴드는 강박으로 작용한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친구들과 함께 무한궤도를 결성해 대상을 수상한 고(故) 신해철은 이후 솔로활동으로 지금의 아이돌급 호응을 얻지만 자신이 ‘그룹사운드’ 출신이라는 걸 잊지 않고 머릿속에 그룹 활동을 박아 놓았다. 실상 밴드야말로 돈과 안정 등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끝내 솔로를 걷어치우고 밴드 넥스트를 만들었다. 정열과 결속에의한 집합체야말로 특별한 힘임을 그는 신뢰했던 것이다. 신해철이 아닌 ‘밴드의 일원’이기를 바랐다. 그의 꿈도 비틀스였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마저 정복한 방탄소년단(BTS)은 ‘한국의 비틀스’를 넘어 ‘미래의 비틀스’, ‘21세기 비틀스’란 찬란한 타이틀을 얻었으니 꿈을 실현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19년 방탄소년단이 비틀스가 섰던 미국 에드 설리번 극장에서 ‘스티븐 콜베어 쇼’에 출연했을 때 해당 방송은 그들에게 ‘유튜브 시대의 비틀스’라는 영예를 건넸다. 이후 방탄소년단은 북미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과 ‘록의 보스’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빌보드 싱글 차트 넘버 원의 영광을 무려 여섯 차례나 누렸다.
해외 언론이 전설의 비틀스에 방탄소년단을 견준 것은 이런 센세이션과 더불어 공히 불리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피땀눈물의 정열과 극복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서였다. 비틀스는 멋진 옷, 돈, 풀장을 갈구했던 노동계급 출신 젊은이들이었고 방탄소년단 역시 오랫동안 ‘흙수저’로 통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열정(work hard) 외에 방탄소년단이 남긴 중요한 덕목이 또 하나 있다. 그들은 7명이 똘똘 뭉쳐 언제나 한 팀(one team)으로 움직였다. 믹스테이프 공개 말고 그 흔한 유닛, 솔로 활동에 조금도 눈을 두지 않았다. 개별보다 그룹의 시너지를 믿는 ‘함께’(work together)의 가치였다. 방탄소년단의 10년을 관통한 두 가지 도덕적 가치라 할 것이다.
하지만 입대 이슈와 긴 세월의 피로감 때문인지 어느덧 동행은 깨지고 현재 멤버들이 일제히 솔로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민의 빌보드 1위라는 성과가 있긴 해도 ‘아미’(팬덤명)와 세계음악계가 기억하는 것은 멤버 개개인이 아니라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 이미지다. 일곱의 완전체가 아니더라도, 많이 지쳤더라도 방탄소년단은 혼자 뛰지 말고 같이 뛰어야 한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자신들뿐만 아니라 K팝의 운명도 걸머지고 있다. 10년을 축하한다. 고난을 딛고 일어나 위대한 영광의 10년을 맞이했지만 우려 또한 고개를 든다. 우린 ‘그룹’ 방탄소년단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