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인사잡음 줄잇는 거래소..자초한 `신뢰위기`

by이슬기 기자
2019.01.31 05:50:00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한국거래소의 연초 정기인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를 일으킨 부서장을 보직 해임한 지 1년도 안 돼 복귀시킨 것을 두고 안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거래소는 근무시간 중 술을 마시고 부서 직원들을 상대로 전화를 걸어 시비를 거는 등 갑질 문제를 일으킨 부서장 A씨를 보직해임 했다. 거래소의 내부 규정상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음주를 할 수 없는데 그는 그날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의 징계는 주의·견책·감봉·정직·면직으로 강도가 세지는데 그는 견책 징계를 받아 이후 6개월간 승진과 호봉승급이 제한됐다. 6개월 승진 제한도 솜방망이 징계라는 지적이 일었는데 거래소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9일 다시 A씨에게 보직을 부여하자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거래소는 “징계 이후 어느 정도 자숙기간을 거쳤다고 봤고 그간 해왔던 업무 내용을 평가해 인사권자가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기인사에 앞서 단행한 임원 인사에서는 임원 자리 하나를 신설해놓고도 마치 처음부터 임원 자리가 있었던 양 보도자료를 배포해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비난을 샀다.

거래소에서 상사의 성희롱에 시달린 여직원이 수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여러 불합리한 근무환경이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장남인 직원한테만 지급하고 기혼 장녀 직원에게는 지급하지 않아 논란이 된 ‘장남수당’부터 직장 내 괴롭힘 등 문제가 꼬리를 물고 불거지는 양상이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에서 제출받은 ‘한국거래소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거래소 직원의 17.4%가 “지난 6개월 동안 주 1회 이상 불합리한 근무환경으로 피해를 겪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 상사가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잡거나 개인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거래소 내부에서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문제 있는 인사들은 윗선의 신임을 받고 계속해서 간택되는 반면, 능력 있고 후배들로부터 인정받는 인사들은 금방 자리에서 밀려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기인사가 발표된 당일 한 거래소 직원은 “지금 거래소를 둘러싼 잡음이 많은 상황인데도 불필요한 임원 자리만 늘리고 문제 있는 인사에겐 솜방망이 처벌 이후 금방 보직을 다시 부여하기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내부에서도 신뢰받지 못하는 조직이 과연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거래소 스스로부터 내부 기강을 다잡지 않으면 ‘자본시장의 파수꾼’ 역할도 기대할 수 없는 건 자명하다. 거래소의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