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사랑+일=행복? 새 공식 찾으세요"

by김용운 기자
2016.04.05 06:16:10

''사회생활 어려운 극복법'' 특강 열어
현대인 좌절, 무얼 원하는지 묻지 않아서
전문직종·기업 임원도 직업불만 많아
성공 기준·형태 여러 가지
자신과 대화시간 갖고
가장 소중한 것 우선순위 둬야

알랭 드 보통이 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보통은 “자신과의 대화는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다”라며 “수백시간 수천시간 대화하라”고 강조했다(사진=인생학교 서울).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한국을 방문한 것이 벌써 8번째다. 이제 마음의 고향 같다.” 연단에 오른 알랭 드 보통(47)이 한국에 대한 친근함을 표현하며 인사를 건넸다.

3일 오후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임에도 1000석 규모의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의 좌석은 꽉 찼다. ‘인생학교 서울’이 주최한 보통의 특강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날 보통은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주제로 열강을 했다. 무대 위로 보통의 모습이 보이자 일부 청중은 수첩을 꺼내며 강연내용을 메모할 준비를 했다.

△‘사랑·일로 행복 추구’는 18세기 이후 나타나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보통이 처음 강조한 것은 사랑과 일의 성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지금의 사회분위기가 사실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멋진 개념이자 악몽”임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사회생활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행복은 대개 사랑과 일에서 온다. 그러나 18세기 낭만주의의 붐이 일고 이후 민주주의가 보편적이 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사랑이나 일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지금 현대인이 어려움을 느끼는 배경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맨틱한 사랑과 결혼은 일부 유한계층에게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일을 통한 자아성취와 행복 또한 미켈란젤로나 다빈치 같은 소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 대부분 일하는 행위가 행복의 수단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접어들면서 누구나 사랑과 결혼, 또 일을 통해 생계 외에도 자아를 성장시키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여기서 이상과 현실과의 간극이 생긴다. 그 탓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보통이 주목한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과거에 비해 삶의 환경 자체가 몰라보게 좋아진 현대인이 갈수록 사회생활을 어렵게 느끼는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사랑과 더불어 자아성장의 일을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이 번번이 좌절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특히 사랑이라고 말하는 여러 감성적인 교류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사랑을 직관적인 본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랑이란 감정도 결국 타인과의 교감에 의해 발달시킨 것이다. 그러니 감성지능을 키우는 법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랭 드 보통이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안안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시회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주제로 펼친 특강에서 청중들이 강연에 열중하고 있다(사진=인생학교 서울).




△일이 불만? 어떤 일을 원하는지 묻지 않은 탓

보통은 사회생활 중에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하는 현대인이 많아진 이유에 대해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기업의 고위 임원이나 금융계·의료계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상하게도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드물었다”며 “그들은 그저 명함을 보여줬을 때 남들이 인정해주는 직업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이 누리는 명예와 부와 별개로 가슴은 차갑게 식고 일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보통은 “내 적성에 맞는 일을 고르기 위해서는 수백시간, 수천시간 동안 자신과의 대화를 해야 하지만 그런 과정 자체를 ‘시간낭비’라고 여긴다”며 “단순히 남 앞에서 뽐내기 위한 ‘명함’을 위해 직업을 선택한 경우 결과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음에도 심지어 대학에서조차 직업에 필요한 기술만 가르쳐 줄 뿐 어떤 일이 적성에 맞는지, 하고 싶은지 숙고하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이루는 게 성공

사회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보통이 꼽은 것은 ‘성공의 기준’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저 부와 명예 혹은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성공의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본인에 대해 늘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이 진정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돈을 많이 벌고 직위가 올라가는 것이 성공이 아니다. 성공은 더 다양한 형태로 성취할 수 있기에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집중하면서 스스로 성취감을 느낀다면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보통은 이를 위해 다시 한 번 감성지능을 발달시키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모두 일을 한다. 사실 일을 한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다. 결코 혼자 갈 수 없다. 타인과 교류하며 서로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감성지능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국에 오면 사람들이 감성에 대해 갈망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은 IT 부문에서 빠른 발전을 이룩했다. 감성지능을 발달시키는 것도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알랭 드 보통은?

1969년생.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철학석사·박사를 마쳤다. 1993년 첫 소설 ‘왜 우리는 사랑하는가’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후 ‘불안’ ‘여행의 기술’ ‘일의 기쁨과 슬픔’ 등의 에세이로 이름을 알렸다. 철학·심리학에 기반한 일상의 문제를 특유의 감각을 살려 창의적으로 분석해 주목받고 있다. 2008년 런던에 자신이 세운 ‘인생학교’의 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시회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주제로 특강을 펼치고 있다(사진=인생학교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