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가격 낮다고 아우성인데 약값 또 깎는 보건당국

by천승현 기자
2016.02.03 07:00:00

복지부, 3월부터 4665개 품목 3.6% 인하
실거래가 조사로 상한가보다 낮게 거래된 의약품 가격 인하
제약사 과열 경쟁·병원 요구로 저가 공급 불가피
국산신약·바이오시밀러 제품 대거 약가 인하
업계 "반복적인 약가인하로 영업전략 차질 불가피"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보령제약(003850)이 개발한 고혈압신약 ‘카나브60㎎’은 지난해 많이 팔렸다는 이유로 약가가 인하될 처지에 놓였지만 가까스로 모면했다. 수출 신약에 대한 혜택으로 약가인하 대신 판매금액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사용량 약가 연동 환급제’의 첫 사례로 적용됐다. 하지만 오는 3월부터 일부 거래처에서 보험상한가보다 싸게 팔았다는 이유로 보험약가가 0.7% 인하된다. 고용량 제품 ‘카나브120㎎’은 2014년 3월 보험상한가가 807원에서 781원으로 인하된 지 2년 만에 추가로 7원 떨어진다.

보령제약 ‘카나브120mg’ 약가인하 현황(자료: 보건복지부)
제약업계가 보험의약품의 전방위 약가 인하 정책때문에 또다시 울상을 짓고 있다. 제약사들은 “반복적인 약가인하로 인해 영업전략도 수시로 재설정해야 한다”며 울상이다.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오는 3월부터 총 4655개 품목의 보험약가가 평균 3.6% 인하된다. 4655개 제품의 공급량을 적용한 건강보험 재정 절감비율은 1.96%로 복지부는 추정했다. 복지부는 이번 약가인하로 연간 1368억원의 재정 절감 효과를 기대했다.

제약사별로는 신풍제약(019170)이 가장 많은 142개 품목의 약가가 인하되고 명인제약, 한림제약, JW중외제약(001060), 일동제약(000230) 등도 약가인하 제품이 100개가 넘었다.

실거래가 조사에 따른 약가인하다. 보건당국은 정기적으로 전국 병·의원 및 약국을 대상으로 의약품의 거래 현황을 조사하고 제약사·도매상과의 거래과정에서 보험상한가보다 낮게 거래가 이뤄진 사실을 확인하면 해당 의약품의 가격을 인하한다. 보건당국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의 거래현황을 조사해 약가인하 대상과 인하율을 결정했다.

실거래가 약가인하제도는 지난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이후 2년간 유예됐고 이번에 2년 만에 재시행됐는데 이 조사가 시행된 이후 가장 큰 폭의 약가인하가 단행된다.

보험의약품 실거래가 조사에 따른 상한금액 조정 실적 현황(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인하율은 재정 절감 비율)
제약사들이 보험상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의약품을 공급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제약사간 영업 경쟁으로 자발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경우가 많고 거래 관계상 ‘갑’의 위치에 있는 병·의원의 요구로 저가 공급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제약업계에서는 최근 시행됐던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의 영향으로 큰 폭의 약가인하 요인이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지난 2013년 2월부터 시행된 시장형 실거래가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제약사·도매상으로부터 의약품을 보험상한가보다 싸게 구매하면 차액의 70%를 돌려받는 제도다. 100원짜리 제품을 50원에 구매하면 절감분 50원의 70%인 35원을 받는 방식이다. 이때 50원에 거래된 100원짜리 약의 보험상한가는 전체 거래가격을 조사해 일정 비율로 인하된다.

시장형 실거래가 시행 이후 병의원은 인센티브를 타내기 위해 의약품을 싸게 구매하기 위해 혈안이 됐고, 제약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종전보다 저가로 공급한 결과 약가인하 손실도 입게 됐다.



실제로 이번 약가인하에서 실거래가 약가인하 상한선인 10% 인하가 예고된 103개 품목 중 70여개 품목이 병원내에서 사용되는 주사제나 수액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업체는 제약사로부터 의약품을 공급받은 도매상의 저가공급으로 약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고, 일부 업체들은 판매 제휴업체의 영업활동으로 약가가 내려갔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업체별 약가인하 품목 수 현황(자료: 보건복지부)
특히 이번 약가인하 대상에는 국내업체들이 개발한 신약 제품들도 대거 포함됐다.

국산신약 중 가장 많이 팔리는 보령제약의 고혈압신약 ‘카나브’의 경우 60mg, 120mg 2종 모두 이번에 약가가 인하된다. 카나브 120mg은 지난 2014년 많이 팔린 약의 가격을 내리는 사용량 약가연동제가 적용돼 3.2% 인하된데 이어 이번에 추가로 0.9% 떨어진다. 카나브60mg은 보건복지부가 2014년 12월 발표한 ‘제약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의 주요 정책의 수혜로 지난해 약가인하를 모면했지만 이번 실거래가 조사에 따른 약가인하는 피하지 못했다.

지난 2007년 국산신약 12호로 발매된 대원제약(003220)의 ‘펠루비’는 보험약가가 1% 인하되고 유한양행(000100)의 ‘레바넥스’(0.9%), LG생명과학(068870)의 ‘제미글로’(0.1%), 부광약품의 ‘레보비르’(0.1%) 등 국산신약들도 약가인하 대상에 포함됐다.

최근 ‘가격 홀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제품도 약가가 내려간다. 셀트리온이 개발한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는 37만892원에서 36만3530원으로 2.0% 떨어진다.

국내에서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특허 만료 전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70%까지만 받을 수 있어 바이오업체들이 “가격 산정기준이 낮에 수출에 지장이 있다”며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약가인하는 제약사들의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약가 사후관리에 따른 반복적인 약가인하로 제약사들은 영업전략 수립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울상이다. 한국먼디파마의 ‘노스판패취’는 지난해 8월 사용량 약가 연동제 적용으로 약가가 5.4% 인하됐는데도 7개월만에 추가로 0.4% 내려간다. 한국제약협회는 최근 실거래가 조사 주기를 매년에서 2·3년으로 연장해달라고 복지부에 건의했다.

국내업체 한 영업본부장은 “매년 초 품목별 매출 목표를 수립하는데 돌연 약가가 인하되면 인하 폭이 작더라도 영업전략은 수정해야 한다”면서 “업체간 경쟁도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약국 등의 저가 공급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영업현장에서의 불만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