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기업 54곳 살생부 올라…내년엔 '5대 업종' 대수술
by김동욱 기자
2015.12.31 06:00:00
금감원, 부실 대기업 19곳 추가
채권은행 충당금 2조5000억원 달해
당국, 상시 구조조정시스템 갖추기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실효 대비해
내달 금융권과 ''업무협약'' 마련
[이데일리 김동욱 정다슬 기자] 내년 초부터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대기업 19곳을 추가로 구조조정 리스트에 올린 데 이어 업황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철강, 해운 등 5대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실기업을 수시로 솎아낼 수 있는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갖춰진다. 그동안 은행권 대출에 연명해 온 부실기업으로선 더는 설 자리가 사라진다는 얘기다. 다만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연내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내년 초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올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크게 늘어나면서 채권은행들이 쌓아야 하는 충당금 규모는 2조 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연말 진행된 대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 동아원 등 상장사 3곳을 포함해 모두 19곳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으로 추려졌다. 지난 상반기 평가 때 선정된 35곳을 합하면 올해만 대기업 54곳이 구조조정 리스트에 오른 셈이다.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은 175곳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돼 총 229곳이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랐다. 대기업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진행한 2010년(65곳) 이후, 중소기업은 금융위기 여파로 한 해 3차례나 신용위험평가로 부실기업을 가려냈던 2009년(512곳)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구조적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해운· 석유· 화학· 철강· 건설과 같은 기간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정부가 맡는다. 산업 차원의 구조적인 경쟁력에 문제가 있는 이들 업종은 채권은행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조선, 해운과 같은 경기 민간형 산업의 경우 국내외 공급과잉 등으로 구조적인 취약성을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내 협의체에서 논의된 구조조정 지원 방향을 기초로 적극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24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5대 업종에 대한 현황을 살펴보고 추후 구조조정 방향을 논의했다. 과잉공급과 과당경쟁 상태에 놓인 조선업은 업계 자구노력을 전제로 경영정상화 방안을 찾되 성과가 나지 않으면 M&A(인수합병)나 청산에 나서기로 했다. 해운업에 대해선 12억 달러 규모로 선박 건조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대신 부채비율을 400% 아래로 떨어뜨린 경우에만 선박을 새로 건조할 자금을 댄다는 조건을 달았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촉법이다. 올해 말 일몰을 앞둔 기촉법이 연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연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효력을 상실하면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워크아웃을 통한 구조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이번에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 11곳이다. 금감원은 우선 이들 기업을 상대로 워크아웃 신청을 독려할 방침이다. 일단 31일까지만 시중은행이 참여하는 채권단협의체에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내년 1월 기촉법이 효력을 상실해도 워크아웃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C등급을 받은 기업으로선 물리적으로 워크아웃을 신청하기가 상당히 빠듯한 상황이다. 양현근 금감원 부원장보는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많은 기업들이 (워크아웃 신청)을 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기촉법 실효에 따른 구조조정 공백을 막기 위해 내년 1월 금융권이 참여하는 ‘구조조정 업무협약’을 마련한다. 채권단의 75%만 찬성하면 워크아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임시 규칙을 만들어 기촉법이 재입법 될 때까지 한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자율협약이긴 하지만 금감원은 시중은행들이 ‘구조조정 업무협약’에 반드시 참여토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임시 형태의 방안이 마련된다고 해도 C등급을 받은 기업으로선 워크아웃 추진 때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시중은행이 참여한다고 해도 저축은행과 같은 2금융권이 참여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시중은행에서 지원받은 돈을 고스란히 2금융권에 상환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