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中 반도체서 손 뗄 각오 불가피…핵심 칩 생산 막힌다"

by김소연 기자
2024.11.12 05:30:10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中, 저사양 메모리 제품 자급자족
트럼프 재선에 '中 때리기' 강화
첨단장비 현지 반입 금지 2중고
中 라인 '탄력적 전환→매각' 필요
최신 미세화 공정 생산 집중해야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거센 공세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출구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중국 때리기’를 더 강화할 공산이 커졌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레거시(구형) D램 생산량은 줄이는 대신 D램 주력 상품으로 볼 수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선단 공정 생산에 집중함에 따라 중국 공장 역할은 점차 축소할 전망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향후 중국 시장에서 사업을 줄이는 전략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내년 전 세계 HBM 시장 규모는 467억 달러(약 64조 4000억원)로 올해보다 15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HBM은 D램 내 주력 상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 D램 수익에서 HBM 비중은 30%를 넘어설 전망이다. HBM 중에서도 5세대 HBM3E가 내년 시장의 85%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보다 무려 39%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앞서 삼성전자(005930)는 올해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컨퍼런스콜에서 탄력적 설비 투자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HBM과 DDR5 등으로의 전환 투자와 연구개발(R&D)·후공정 투자에 집중할 계획을 밝혔다. 특히 생산은 레거시 라인에서의 1b 나노 전환을 가속화해 시장 내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구공정 기반 DDR4, LPDDR4의 비중을 줄이기로 했다. 서버향 128GB 이상 DDR5 모듈, 모바일 PC 서버향 LPDDR5X 등 하이엔드 제품의 비중을 적극 확대해 범용 제품의 생산량을 감산하는 전략을 공개했다.

SK하이닉스(000660)도 마찬가지다. HBM에서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SK하이닉스는 “가능한 빨리 DDR4 등에 활용했던 레거시 기술을 선단 공정으로 전환해 수요가 둔화하는 제품의 생산은 줄이고 늘어나는 HBM3E의 생산을 확대하는 데 집중해 수요에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레거시 제품은 재고를 소진하고 생산 규모를 줄이며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는 아울러 올해 1월에도 중국 우시 공장 생산라인의 1a 나노 전환을 통해 DDR5, LPDDR5 등 제품 양산이 가능하도록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 상당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쑤저우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중국 시안 1·2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물량의 약 28%를 생산한다.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플래시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만드는 D램의 약 40%, 낸드플래시의 약 30%를 중국 우시·다롄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차세대 메모리 공정 전환과 더불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서의 사업을 점점 줄여가는 판단 역시 필요하다. 대중국 반도체 수출은 그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레거시 D램이나 낸드플래시는 중국 업체들이 자급자족을 통해 만들고 있어 수요가 늘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창신메모리(CXMT)는 중저가용 PC나 모바일에 들어가는 DDR4 등을 생산하고 있고, 최근에는 DDR5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첨단 반도체 영역에서는 미국의 통제 탓에 중국에서 제품 생산도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는 중국 압박이 더 거세질 수 있는 탓이다. 미국은 최근 수년간 첨단 영역에서 중국 통제를 지속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현실적으로 중국 사업을 축소하는 것에 대한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D램 첨단 공정에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필요한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EUV 공정을 진행할 때 중국 공장에서 한국으로 제품을 실어 와서 공정을 한 이후 다시 중국 공장으로 옮기는 식으로 D램을 생산한다. 낸드플래시도 500단 이상에서는 첨단 장비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 공장의 역할이 점차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중 교역을 제한할 수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논리도 개발해야 한다. 중국 사업에 대한 전략적인 판단이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결국 향후 5년 내외로는 한국 기업들은 중국 공장에서 핵심 반도체 제품을 더는 생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D램 기술이 고도화하고 있어 고부가가치 제품은 한국과 미국에서 생산하게 될 것이다. 금액 측면에서 본다면 중국 공장의 생산 비중은 점점 감소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 시장의 중요도는 점차 약화할 것이라는 의미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중국 공장의 최신 설비투자는 진행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중국 공장에서 서서히 손을 떼 매각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할 게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