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첫 여성물리학회장 "기초과학 위기 속 물리학 위상 다시 세우겠다"
by강민구 기자
2024.08.08 06:03:00
[인터뷰]핵이론물리학자 윤진희 인하대 교수
美·日 보다 각각 50년, 30년 늦어···변화 필요성에 공감
CERN 준회원국 가입 등 국제협력 강화 필요
윤 교수 "여성 인력 중용하고, 대중 만나겠다"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물리학회 회원들이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해 선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의대 쏠림현상 등으로 인해 기초과학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대중들이 물리학을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겠습니다.”
한국물리학회 역사상 첫 여성 학회장으로 선출된 윤진희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는 지난 4일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윤 교수는 최근 물리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회장 선거에서 전체 투표율 83% 중 57%의 압도적인 지지로 신임 물리학회장 자리에 올랐다. 미국(1975년, 우젠슝), 일본(1996년, 후미코 요네자와) 등과 비교하면 각각 50년, 30년 늦었지만, 1952년 한국물리학회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한국물리학회장으로 당선된 윤진희 인하대 교수.(사진=윤진희 인하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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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는 지금이 대내외적으로 물리학회가 변화해야 하고, 역할을 해야 할 시기라고 봤다. 대외적으로는 의대 쏠림현상, 지방대 물리학과 통폐합 등으로 인한 위기를 맞았고, 내부적으로는 물리학회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수렴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 때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선거 과정에서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조선대 등 지방에 있는 물리학과가 점점 사라지고 있고, 대학 입시에서 학생들이 물리를 선택하는 비율도 줄어드는 것을 보며 교육 측면에서 위기감을 느꼈다”며 “물리학은 기초과학 전반을 아우르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국가 미래도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중들의 지지와 관심이 있어야 물리학이 다시 발전할 수 있는 만큼 물리학이 대중들에게 더 친근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각종 이슈에도 먼저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회원들이 ‘우리 물리학회’라는 소속감을 갖고 같이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윤 교수는 지난해 상온 초전도체(LK-99) 논란에 물리학회가 즉각 대응해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했던 부분을 좋은 사례로 꼽으면서 “물리학은 검증이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라는 점에서 해당 분야 연구자들이 빠르게 나서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핵이론물리학자로 유럽핵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에서 한국 연구팀(ALICE)을 수년간 이끌며 초기우주 모습을 연구해 왔기 때문에 국제 경험도 풍부하다. 정부가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단기 성과에 치중하기보다 팀 단위 프로젝트를 장려하고, 첨단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국제협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CERN 준회원국 가입 타당성 검토 용역에도 착수했다. 윤 교수는 그동안 선진국들이 만들어놓은 장치를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빌려쓰는 처지여서 주도권을 가질 수 없었지만, 우리나라 국격이 높아진 만큼 준회원국으로 가입해 최첨단 연구를 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좋은 사례로 우리나라가 프랑스 카다라쉬에 짓고 있는 ‘인공태양’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회원국으로 참여하며 분담금도 내고, 사업단 임원을 배출했던 경우를 언급했다. 특히 기업들이 핵융합실험로 부품 수출도 해냈는데 CERN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차세대 장치와 관련된 부품도 수출할 수 있고, 과학자들이 최첨단 연구를 해나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짓고 있는 대형연구시설에 대한 투자와 지원도 계속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이온가속기, 방사광가속기 등 국내 대형 가속기 사업이 지연되거나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첨단 연구시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고 봤다.
윤 교수는 “과학선진국가 중에서 대형가속기 같은 대형연구시설 인프라가 없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며 “국내 연구자들이 연구 주체성을 유지하고, 기초연구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형연구시설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윤 교수는 연구 다양성 측면에서 여성 인력 활용이 중요해지는 만큼 학회 내에서 여성 인력도 활용하면서 문화를 개선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과거보다 개선되고 있다지만 물리학회 여성 비율은 15~20% 수준에 불과하다. 윤 교수는 “여성 회원들을 학회에 많이 참여시키고, 리더십을 기르도록 할 계획”이라며 “학회 내 중요한 일들에 여성들이 참여를 하다 보면 좀더 우리사회가 여성 친화적인 문화로 개선되리라고 본다”고 밝혔다.△1963년 출생 △현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서울대 물리학 학사 △미국 퍼듀대 박사 △인하대 교무부처장 △세계물리연맹 IUPAP WG5 운영위원 △한국물리학회 한국물리학회 정책위 부위원장 △국가과학기술심의회 ICT·융합 전문위원 △한국연구재단 중이온가속기 전문평가위원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정책조정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