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4.07.04 05:00:00
지불 능력이 한계에 달했다며 제발 사정을 헤아려 달라던 소상공인들의 호소는 또 없던 일로 돼 버렸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그제 제7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쳤으나 찬성 11표, 반대 15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이로써 1988년 시행된 최저임금법은 첫해를 제외하고 다음 해부터 시작된 단일 적용 체계가 36년째 그대로 이어지게 됐다.
노동계의 반대 논리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법적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 일부 근로자위원은 “차등 적용 논의 자체가 위법”이라는 억지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제 표결 과정에서는 근로자위원 일부가 위원장 의사봉을 뺏고 투표용지를 찟는 등 물리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노동계의 강한 거부감과 불신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현장의 실상은 다르다. 지난해 법정 최저임금(시급 9860원)을 받지 못하고 일한 근로자는 301만 명에 달했다. 전체 근로자의 13.7%에 해당한다. 취업자 1인당 부가가치창출이 2521만원에 불과한 숙박음식업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비율이 37.3%나 됐다. 업종 특성에 관계없이 단일 임금을 적용한 탓에 최저임금이 말뿐인 사업장이 수두룩해진 것이다.
노동자는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고, 사업주는 형편이 안 돼 주지 못하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부작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혼자 일하는 ‘나홀로 사장’이 늘어나고 주휴 수당을 피하기 위해 ‘쪼개기 알바’를 만드는 사업장이 속출한 것은 일부 사례일 뿐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65.8%까지 높아진 상황에서 사정이 악화되면 음식업, 택시운송업, 편의점 등 부가가치가 낮은 취약업종들의 일자리는 더 말라붙을 수 있다. 일자리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숙박음식업의 부가가치가 제조업의 20%를 겨우 넘기는 등 업종별 격차가 극심한데도 모든 사업장에 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난 7년간 명목상 52.4%나 오른 최저임금의 부작용을 모르지 않는다면 노동계도 명분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 눈앞의 과실보다 전체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는 게 훨씬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