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명 탄 '새만금 잼버리호'엔 선장만 많고 조타수는 없었다"

by이선우 기자
2023.08.11 07:03:12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원인은
마이스 전문가 긴급 설문조사
1000억원 넘는 예산 들인 국제행사
경험 풍부한 총괄 운영사 없이 운영
조직위 역할 세분화해 따라 움직여
조직만 비대 컨트롤타워 역할 못해
난맥상 원인은 장소 아닌 준비부족
자문기구, 민간 검증단 의무화해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벨기에 참가자가 물에 잠긴 대회장을 지나 숙영지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조직위원회 제공)
[이데일리 이선우 기자] “1000억원 예산이 투입된 국제행사에 잼버리 전문가만 있고 행사 전문가는 없었다.”

전시·컨벤션, 이벤트 등 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업계 전문가들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새만금 잼버리) 개영 초반 드러난 운영 난맥상의 원인으로 ‘국제행사 전문가 부재’를 꼽았다. 전체 상황을 한눈에 꿰뚫어 보고 기민하게 대응할 총괄 운영사를 두지 않으면서 사전 준비는 물론 현장 대응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조직위원회가 역할을 세부적으로 나누면서 조직만 비대해지고 제 역할과 기능은 하지 못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현장에서 행사 운영의 전문성이 배제되면서 위기대응 매뉴얼도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데일리는 지난 7일과 8일 새만금 잼버리 파행 운영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마이스 업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을 실시했다. 이메일과 유선으로 진행한 설문에는 대형 엑스포와 국제회의, 축제, 스포츠 대회 등 메가 이벤트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전시주최사, 컨벤션기획사, 이벤트기획사 등 20명의 업계와 학계 전문가가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가 별도의 총괄 운영사를 두지 않은 것을 운영 난맥상의 결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가 집단이 배제되면서 사전 준비뿐 아니라 현장 대응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대형 선박에 선장, 선원만 있고 정작 배를 움직이는 조타수는 없었단 얘기다. 조직위는 전체 기획과 운영을 책임질 총괄 운영사를 두지 않는 대신 조직을 5개 본부 31개 사무국으로 세분화해 부문별로 직접 업체와 계약을 맺는 방식을 택했다.
전북 부안군 하서면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PCO협회에 따르면 조달청 나라장터 시스템에 새만금 잼버리 건으로 올라온 용역은 총 118건으로 이 가운데 60%인 71건을 한국스카우트연맹과 조직위, 전북도가 발주했다. 연맹이 발주한 종합계획 수립을 제외한 70건 중 조직위가 44건 135억원, 전북도가 26건 222억원을 각각 발주했다. 총괄 운영사 역할을 조직위가 하면서 화장실 설치·운영, 대회장 청소 등 세부 분야까지 직접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쪼개기 계약은 현장에서 역할과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 발주량이면 조직위는 공고부터 심사, 선정, 협상, 계약까지 행정 절차에만 상당한 시간과 품을 들였을 것”이라며 “행사 전체를 총괄해야 할 조직위가 실무에 손발이 묶이면서 효율성, 전문성을 모두 놓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당초 총괄 운영사를 선정하려던 조직위는 전북도 의회 등에서 지역 업체 우선 참여를 주장하면서 계획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준비와 운영이 필요한 국제행사가 폐쇄적인 운영으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기획사에 총괄 운영을 맡길 경우 지역 업체가 배제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지역 업체 참여 비중을 정하거나 컨소시엄 구성을 유도하는 등 가능한 방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패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태풍 카눈 북상으로 조기 퇴영 조치가 내려지면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참가자들을 태우기 위해 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대형버스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새만금 잼버리 파행의 원인이 장소 때문은 아니라고 봤다. 대회장인 새만금의 환경은 행사 개최에 있어 ‘상수’였다는 이유에서다. 한 업계 전문가는 “토질 문제로 계획했던 숲 조성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 자리에 대형 돔이라도 설치했어야 했다”며 “준비 기간이 6년이나 있었던 상황에서 장소 탓을 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전에 폭염, 폭우 등 변수를 알고도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 준비 부실이 사태를 키웠다고 평가했다. 물에 잠긴 숙영지, 무방비나 다름없던 폭염 대책, 부실한 위생상태 등을 준비 과정부터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로 지목했다. 업계 관계자는 “어떤 행사든 먹거리와 잠자리, 화장실과 휴게실 같은 편의시설이 기본적이면서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선, 일정 등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귀빈 행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조직위와 전북도가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4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야외행사를 제대로 된 리허설 없이 치른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의견도 나왔다. 조직위는 지난해 8월 열려던 프레 잼버리를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진행하지 못했다. 행사를 두 달여 앞둔 올 6월 미니 잼버리를 2박 3일간 치렀지만, 시기와 규모 면에서 간극이 너무 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 상당수는 실제 리허설이 여의치 않았다면 여러 상황을 감안한 시뮬레이션 방법을 통해서라도 대비책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개막일인 1인 전북 부안군 하서면 행사장에서 참가자가 물을 마시고 있다. 이날 부안군에는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다. 연합뉴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새만금 잼버리와 같은 국제행사 파행 운영의 재발을 막으려면 유치 단계부터 전문성을 담보로 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이스 업계의 행사 기획과 운영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국제행사 개최의 필수 요소로 보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봤다.

행사 유치부터 준비, 개최,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자문 기구, 검증단 형태의 민관 거버넌스 구축을 제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해당 지역이 국제행사를 열 만한 여건과 능력이 있는지, 다양한 변수에 신속한 대응이 가능한 유연한 사고와 조직 구성이 가능한지를 전문적이고 정량적으로 평가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새만금 잼버리 운영 난맥상을 이유로 중소 도시의 대형 국제행사 개최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마이스 업계에는 ‘국제행사는 백 번의 성공보다 한 번의 실패를 경계해야 한다’ ‘악평은 박수갈채보다 더 멀리 오랜 기간 전달된다’는 말이 있다”며 “이번 새만금 잼버리를 국제행사 기획과 운영 전문성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