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입맛에 딱맞춤"…공정가치평가의 변질

by김대연 기자
2023.05.10 07:50:00

[사모펀드 수익률 부풀리기 논란]②
실제 주가·투자원가보다 높은 공정가치
국내 PEF에 회의감 커지는 기관투자가
그러나 자산 가치 뻥튀기 근거는 ''모호''
PEF 입맛 맞춘 회계법인 "고객사 비밀"

[이데일리 지영의 김대연 기자] 투자업계에서 사모펀드(PEF)들의 공정가치평가에 대한 회의감과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PEF가 회계법인에서 실제 시장 가격 대비 평균 2~4배 높은 공정가액을 받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평가 시장이 PEF가 수익률을 과장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9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삼정KPMG는 국내 PEF 운용사 JKL파트너스의 의뢰를 받아 코스피 상장사인 롯데손해보험(000400)의 공정가액 산출을 맡았다. 지난해 11월 기준 삼정KPMG가 롯데손보에 대해 산출한 1주당 공정가액은 6577원에 달한다. 평가 시점 기준으로 코스피시장에서 롯데손보의 실제 1주당 주가가 1500원대였음을 감안하면 시장가 대비 4배 가량, 취득원가(3500원 안팎) 대비 약 2배 높은 수준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PEF는 상장사 투자지분에 대해 공정가치평가로 회계처리를 할 수 없지만, JKL파트너스 측은 기관투자가(LP) 보고 명목으로 외부 평가를 진행해 실무선상에서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다.

삼정KPMG가 산출한 공정가치를 반영하면 JKL파트너스가 롯데손보를 매입한 펀드는 상당히 높은 수익률을 내는 상태가 될 수 있다. 현재 주가가 4년 전 취득가보다 50% 넘게 폭락해 실제로는 손실 폭이 크지만, 공정가치평가액으로 장부 평가를 진행하면 만회하고도 남는 셈이다.

그러나 JKL파트너스가 제출한 공정가치 평가액을 받아든 LP들 사이에서는 회의감이 높은 상황이다. 경영권 보유 지분에 대해 얹어주는 프리미엄을 고려하더라도 과하게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상 인수합병(M&A) 거래에서 반영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20~30% 반영하더라도 나오기 쉽지 않은 금액이 산출돼서다. 특히 롯데손보 투자 이후 4년이 지나 엑시트(투자 회수)시점 및 대출 만기가 임박해 여유가 많지 않은 점이 회의감을 더하는 모양새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공정가치평가를) 해오라고 요구한 적도 없는데 (JKL파트너스가) 가져왔다”며 “다른 기관에선 요구했는지 모르지만, 가격이 과해 우리는 그 기준을 반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재매각할 때가 임박했는데 롯데손보 주가는 폭락한 상태”라며 “그런데도 공정가치나 취득원가를 들이밀며 아직도 자신들이 투자 잘했다고 말하는데, 의도가 나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JKL파트너스 측은 “가격 산출은 회계법인을 통해 객관적으로 한 것이기에 부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며 “우리는 공정가치가 회사의 가치를 더 잘 나타낸다고 판단해서 평가치를 제공해주는 것이고, 반영은 LP의 몫”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우리가 책정한 공정가치를 제공해주면 LP의 절반 정도는 (회계평가 시) 이 가격을 반영하고 있다”며 “이게 신뢰하기 어려운 가격이라면 쓰겠느냐”라고 주장했다.



한편, 롯데손해보험의 공정가치를 시가대비 4배가량 높게 평가한 근거에 대해 삼정KPMG 측은 “고객사와의 비밀유지 의무가 있는 건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공정가치평가액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공정가치평가 과정에서 자산평가의 주체인 회계법인과 의뢰자인 고객(PEF)간 적극적인 의견 교환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고객사의 입김이 아예 들어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특히 비상장 영역으로 들어가면 공정가치를 활용한 소위 ‘가치 뻥튀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관투자자 고위 관계자는 “시가가 명백히 있는 자산마저도 괴리가 심한 가격이 나오는데, 부르는 게 값인 비상장 영역은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며 “이미 내어준 돈을 돌려달라고 할 수단이 없으니 억지로 지켜보지만, 과연 그들이 그 공정가치 가격대로 팔아올 수나 있겠냐고 물으면 그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비상장사 중에는 공정가치평가값의 적정성과 관련된 논쟁이 끝내 법정공방으로 번진 사례도 있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컨소시엄 간 소송전이 대표적이다. 교보생명 지분을 매입한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지난 2015년까지 기업공개(IPO)를 하지 못하면 주식을 다시 팔 수 있는 풋옵션을 갖고 있었고, 이에 따라 지난 2018년 풋옵션 행사를 시도했다.

문제는 어피니티 측이 제시한 주당 행사 가격이다. 어피니티 측은 교보생명에 풋옵션 행사가를 매입원가(24만5000원)보다 67%가량 높은 40만9000원으로 책정해 총 2조원 이상에 매수할 것을 요구했다. 풋옵션 행사가격은 딜로이트안진이 어피니티 측 의뢰를 받아 공정가치로 산출한 금액이었다. 교보생명은 ‘딜로이트안진이 어피니티의 의뢰를 받아 교보생명 주식의 공정시장 가치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어피니티와 공모해 가격을 의도적으로 부풀렸다’며 지난 2020년 4월 딜로이트안진과 어피니티 임직원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김경율 공인회계사는 “딜로이트안진이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공정가치평가 사례에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정가치평가에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 통일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외부에 공개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