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 아냐"…이태원 참사에 21년전 악몽 떠올린 日[김보겸의 일본in]
by김보겸 기자
2022.10.31 07:44:55
11명 사망한 2001년 아카시시 불꽃축제 사건
폭주족 단속 힘쏟으며 경비인력 확충엔 소홀
참사 계기로 경비업법 개정…DJ폴리스 등장
"제2의 세월호 사태, 尹정부 최대 시련 될 것"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될 이태원 압사 사고에 21년 전 아카시시 불꽃축제 에서 벌어진 사고를 떠올리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지난 2001년 7월, 효고현 아카시시 인근 육교에서 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와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 어린이 9명을 포함해 11명이 숨진 사태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 지난 2001년 7월21일 사고 약 1시간 반 전 현장 인근 주민들이 촬영한 아카시시 육교.(사진=고베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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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육교 위 인구 밀도는 1㎡당 13~15명에 달했다. 1㎡당 4~5명을 넘으면 걷기 어려워지며, 10명이 넘으면 자기 발로 서 있는다기보다는 떠 있는 듯한 상태에 해당한다. 이 사고로 70대 노인 2명과 어린이 9명이 전신 압박에 의한 호흡 곤란 증후군으로 숨지고, 247명이 부상을 입었다.
아카시시 경찰서의 혼잡 경비 계획서에 따르면 당시 육교에는 경찰관이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았다. 효고현 경찰들이 폭주족 대책을 중시하면서 폭주족 경비 요원은 강화한 반면, 혼잡 경비 인력 마련에는 소홀한 탓이다. 마약 단속 및 성추행 등 치안과 방역을 위한 인력에는 200명을 배치한 반면, 경비 인력은 평시 수준으로 마련한 이태원 사태와 닮아 있는 대목이다.
아카시시 참사 유족들도 21년 후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애도했다. 당시 두 살배기 둘째아들을 잃은 시모무라 세이지(64) 아키시시 보도교 사고 유가족회 회장은 고베신문에 “같은 사고 유족으로서 국가는 다르지만 마음이 아프다”며 “생존자 중에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발병하는 경우가 있을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발생한 압사로 153명 사망자가 발생한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서 한 외국인이 추모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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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 일본은 2005년 11월 경비업법을 개정했다. 기존 상주경비와 교통유도경비에 더해 혼잡 경비를 신설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경비 및 교통통제를 하고 도미노 현상을 막기 위한 경비 인력을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효고현 경찰의 ‘혼잡 경비 안내’에 따르면 사전에 인파가 몰릴 것이 예측 가능한 행사일 경우 혼잡 경비 대상이 된다. 불꽃놀이나 스포츠 경기, 공연 등이 대표적이며 100만명이 몰리는 시부야 핼러윈 행사도 물론 포함된다.
경비가 필요한 이유로는 ‘개개인이 모여 군집을 이루면 위험도가 높아진다’, ‘익명성 때문에 이성을 잃기 쉬워진다’ 등을 꼽고 있다. 혼란과 무질서가 겹쳐져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예상보다도 피해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터널과 계단, 중간에 빠져나갈 길이 없는 좁은 골목 등을 위주로 경비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고도 돼 있다. 이런 곳에서는 일방통행을 원칙으로 하며, 인파가 멈추지 않고 이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게 경찰 지침이다.
| 핼러윈 행사 혼잡을 막기 위해 일본 경찰이 시부야역 인근에 ‘DJ 폴리스’를 배치해 보행자를 안내하고 있다.(사진=NH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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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 2013년 6월,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을 놓고 일본이 호주에 승리를 거둔 예선 때 경찰 인력 배치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당시 일본 경시청 제9기동대 ‘DJ 폴리스’는 3만여명이 모인 시부야역 앞에 출동해 확성기를 잡고 “이런 좋은 날에 화를 내고 싶지 않다”, “일본 대표팀 같은 팀워크를 발휘해 천천히 움직여라”며 교통 통제에 나섰다.
수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이날 경찰 지시에 따라 군중이 이동하면서 부상자나 소동을 일으키는 이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경찰은 몸싸움이 벌어질 경우 대응책 및 부상자 발생에 대비해 사전에 구급차와 경찰차 통로를 마련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대책을 세웠다.
지난해 8월11일에는 교토에서 열린 불꽃놀이를 보러 카메오카역에 사람이 몰리기도 했다. 이 때 경비 인력이 역 입구에서 단호한 어조로 “멈춰라”, “나는 당신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외치기도 했다. 당시 해당 남성이 노마스크로 소리를 지른다며 못마땅하다는 반응도 나왔지만, 2001년 아카시 불꽃축제에서 벌어진 인명사고를 연상케 하는 어수선한 현장에선 불가피한 태도였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자 핼러윈 행사를 앞둔 일본서도 긴장의 끈을 죄는 모습이다. 일본 경찰은 ‘한국판 이태원’ 시부야에 경찰력을 배치했다. 시부야구는 이 지역에서 심야 음주를 일시적으로 금지한다. 28일 오후 6시부터 내달 오전 5시까지는 공원과 도로 등 일부 지역에서 야간 노상 음주를 금지해 분위기 과열을 막는다. 편의점과 백화점 등 점포 42곳에도 30일과 31일 밤부터 다음달 1일 새벽까지 주류 판매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한다.
|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 일대에 대형 압사 참사가 발생한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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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사상자 대다수가 20대 젊은층이라는 점에서 ‘제2의 세월호’에 비견되는 이태원 사태에 윤석열 정부가 최대 시련에 맞닥뜨렸다는 목소리도 일본 언론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규제가 완화되고 3년 만에 본격적으로 행사가 열린 만큼, 많은 이들이 몰릴 것으로 충분히 예상됐지만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계획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합동 브리핑에서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예년의 경우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라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 이날 보수단체와 양대 노총이 집회를 연 광화문에 경력 상당수가 배치되면서 이태원에는 평시 수준의 인원만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고 직후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2016년 박 전 대통령의 친구(최순실) 국정개입으로 시위가 일어났을 때 (세월호) 사태에 대한 대응이 다시 떠오르면서 퇴진 원인 중 하나가 됐다”며 “다수 젊은이들의 생명에 관한 사고는 정권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 위기”라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역시 “이태원 참사는 당국의 대응 책임”이라며 “행정이 사고 현장을 통제하기 못했기에 야당은 ‘인재’라는 이유로 정부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 윤석열 정부에 타격이 예상된다고 했다.